[고은의 지평선]외로울땐 하늘을 보라, 우주에서 우린 …

  • 입력 2008년 6월 3일 02시 55분


모 심은 뒤의 무논! 그 가득 채워진 물 속에 어린 모들이 아직 제 뿌리를 내리지 못한 불안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 생명의 첫걸음이 진행되는 무논! 그런 무논이야말로 내 아버지이고 할아버지이다. 내 근원이다. 고향이다.

끝내 고향이란 농업의 산물이다. 고향의 향(鄕)이란 농업의 현장인 것이다. 그런 고향에서 영락없이 무논 개구리 울음소리가 밤을 꽉 채운다. 아 신성한 충만의 시간이다.

긴 여행에서는 그 여행을 더 길게 연장하기 위해서인 것처럼 ‘파우스트’를 읽는다.

가벼운 읽을거리보다 그것이 내 여행을 덜 지치게 한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100세가 된다. 그때까지 줄곧 따라다니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농간으로 눈이 먼다. 그래서 사물을 잘도 파악하던 시력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그때까지 온갖 사상과 학식으로 된 지(知)의 세계를 떠나 생(生)의 세계로 들어간다. 육안을 잃은 대가로 심안이 열린 것이다.

그리하여 ‘멈추어라 순간이여! 너는 참으로 아름답구나’라고 환호한다. 100세의 깨달음이다.

그 뒤 이 늙은 주인공은 더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작자 자신 14세 때의 첫사랑 그레트헨과 동행하여 천상에 이르게 된다.

나는 이 고전을 한 번에 읽지 않는다.

조금씩 조금씩 카스텔라를 뜯어먹던 어린 시절의 가난처럼 조금씩 조금씩 읽다 말다 한다.

어느 여행에서는 ‘원형(原型) 파우스트’를, 어느 여행의 비행기 속에서는 제1부의 한 꼭지를 이런 식으로 읽는다.

이렇게 읽다 말다 하다가 보면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리노라’에 이를 것이다. 이 위대한 한마디가 생애 전체를 통해서 이루어졌고 그 생애가 끝난 뒤에 봉인 (封印)된 것이 세상에 남겨져서 이 고전의 위대한 종결이 된 것이다.

어쩌면 독일문학의 여성은 다른 문학에서 볼 수 없는 종교이다. 북방의 원형? 혹은 마리아 신앙? 어쨌든 인류사의 남성주의에 가차 없는 대안으로서의 여성을 괴테 릴케 헤세의 내림으로 심화해온다. 거기서 여성들은 상위의 대상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사내들의 못된 짓, 못난 짓으로 세계가 있어왔다. 앞으로 한 5000년쯤 지구의 사내들은 부엌을 맡고 아이 보고 장바구니 카트를 끌어라. 국회의원 말고 국회의원 비서관이 되어라.

오키나와 묘지는 여자의 성기 형상이다. 제 어미의 몸에서 태어나 제 어미의 몸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지상에는 1000만 종 이상의 생물이 있다 한다. 그 생물 중의 하나인 인간인 나.

지상에는 곧 인구 70억이 될 것이다. 그 70억 중의 하나인 나.

저 6월 민주항쟁의 인파. 저 월드컵 붉은 악마의 열렬한 인파. 저 광우병 미국 소 반대 촛불집회의 10대 인파.

하나 집에 돌아가면 나 혼자이다. 어떤 축제에서 돌아간 뒤의 공허 속에 남겨진 그 혼자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외로움은 아프다.

어차피 탄생과 사망 사이의 일생도 그 탄생이나 사망처럼 나 혼자의 것.

누구는 이것을 본질적이라 하고 누구는 실존적이라 한다.

나는 이 외로움에 대해서 아무것도 정의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해명할 수 없다.

다만 외로울 때는 백과사전이 있으면 참 좋을 것이다. 그것을 여기저기 들추어보건대 온갖 사물과 개념에 대한 풀이가 있다. 때로 친절한 것도 있고 때로 무미건조한 것도 있다. 거기에 슬그머니 말을 걸어보아라. 어느새 그대는 그 풀이들과 대화를 하고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다시 외로울 때는 국어사전이라도 펴보아라. 거기에는 낱말 하나하나의 넋이 납골당의 한 납골함에 들어 있다가 나와 그대의 만남을 기다릴 것이다. 그것은 그냥 낱말이 아니라 낱말의 이승이리라.

당장 그대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것들 또한 그 답답한 사전 속에서 얼마나 외로워했을 것인가.

그대라는 외로움과 사전 속의 외로움 둘이 만나서 서로 주고받는 황홀한 진실이 왜 태어나지 않겠는가.

백과사전으로도 국어사전으로도 외로움이 녹아버리지 않는다면 그냥 그 외로움에 다 내맡기고 빈 하늘을 바라보아라.

하늘이 무엇이겠느냐. 지상의 목숨들에게 붙어 있는 눈들로 하여금 실컷 바라보라고 거기 있는 것 아닌가.

하늘을 자꾸 보아라. 그래야 지상의 일을 제대로 알게 되고 깨닫게 될 터.

하늘! 내가 한 나라의 속 좁은 자식에 갇히지 않고 우주의 떠꺼머리 자식이라는 사실이 나를 신명나게 한다.

나는 우주 안에서 무한의 생명이다. 결코 유한에 딱 멈출 수 없는 내 생명이 곧 우주의 어떤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한 영토는 한반도와 그 밖의 섬들로 되어 있다.

그런데도 남쪽의 배타적 수역 문제나 독도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은 채이다. 이런 이웃과의 갈등은 두고두고 그치지 않으리라.

북쪽의 국경은 어느 정도의 안정된 상태이다. 청나라 말기의 굴욕적인 한중 국경을 극복한 것이다.

백두산을 송두리째 방기한 그때의 사대주의를 넘어섰다.

김일성과 저우언라이는 6·25 직후 국경회담을 했다. 백두산 3분의 1강을 중국 영토로 하고 그 나머지의 양지(陽地)가 우리 쪽이다. 그 당시로서는 배짱 있는 국경 획정이었다. 또 압록강 국경도 강심(江心)을 통상의 국경선으로 하지 않고 중국 쪽 강기슭의 작은 섬들까지 우리 쪽으로 획정했다.

그 뒤 김일성은 베이징의 마오쩌둥에게 옌볜자치주를 아예 우리 영토로 양도하라고 했다. 고대사와 근세사(近世史)의 연고권 주장이었다. 내 심장 달라면 떼어주겠다, 내 눈 파내어 주겠다, 그러나 내 나라 영토는 티끌 하나라도 안 된다고 마오쩌둥은 화를 냈다. 그 화는 10일간이나 풀리지 않았다.

영토 문제는 아직도 세계지도의 미완성을 말한다. 아니, 영토 문제는 언제까지나 생존의 문제이다.

고은 시인·서울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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