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닮은 공간에서 자연을 담은 공간으로”

  • 입력 2008년 5월 21일 03시 05분


모던 디자인에 ‘자연주의’ 입히는 日건축가 이토 도요오 씨

갑자기 눈앞으로 쑥 내민 한쪽 손등을 다른 한 손 끝으로 슬쩍 문지르며 그가 물었다.

“이 손등의 피부가 위나 장의 점막과 분리됐다고 생각하시나요?”

세련된 모던(modern) 디자인에 자연주의 철학을 입히는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오(伊東豊雄·67) 씨. 그는 최근 대만 타이중(臺中) 오페라하우스 설계에서 여러 방향으로 연결된 3개의 극장 공간을 제안했다. 건축주는 이 ‘연속된 분할 공간’의 실현을 위해 당초 공모에 내건 공사 비용을 2배 올리는 데 동의했다.

“이 오페라하우스는 연속되는 곡면(曲面) 공간의 집합체입니다. 안과 밖의 구분이 명확한 육면체 공간과 달리 어디가 밖이고 안인지 모호한, 인간의 육체를 닮은 공간이죠. 제가 궁극적으로 만들고 싶었던 건축물입니다.”

단추 없는 노타이 잿빛 정장이 순간 승복(僧服)이나 도복(道服)처럼 보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문화도시 국제콘퍼런스에서 주제 발표를 하기 위해 방한한 그를 16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이토 씨는 현대 일본 건축계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 일본 구마모토(熊本) 현 ‘아트폴리스(artpolis)’의 커미셔너라는 직함이 그 위상을 대변한다. 1988년 건설을 시작한 환경친화도시 아트폴리스는 정상의 건축가에게 디자인 총괄을 맡기고 있다.

잘 알려진 그의 건축물로는 도쿄 명품 거리인 오모테산도(表參道)의 토즈(TOD'S) 빌딩(2004년)을 꼽을 수 있다. 이 건물은 가로수 가지 모양을 외벽 디자인에 반영해 자연 친화 메시지를 각인시킨다. 사물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냈는데도 세련미가 넘친다.

“자연의 형태를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으려면 자연 속에 숨어 있는 규칙을 발견해 건축에 재구성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나뭇가지가 갈라지는 것은 단순한 규칙 같지만 주변과의 관계라는 복잡한 변수가 작용하죠. 토즈 빌딩에는 그런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센다이(仙臺) 시 미디어테크(2001년)는 그가 추구하는 새로운 건축과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판과 기둥으로 얽어 언뜻 단순해 보이는 이 건물을 통해 주변 환경과의 조화, 건축가가 미리 정하지 않는 유동적인 공간 활용을 추구했다.

“기존의 경직된 도서관과 달리 누워서 뒹굴며 책을 읽는 자유로운 공간을 디자인했죠. 그런데 ‘도서관을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단체가 즉각 반대 운동을 벌이더군요. 사회와 건축 사이의 갭(gap)을 조금씩, 조심스럽게 줄이는 게 제 건축의 의미입니다.”

민현식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는 “센다이 미디어테크는 ‘환경과 호응하는 가운데 사용자가 용도를 선택한다’는 이토 씨의 건축 철학이 잘 반영된 건물”이라며 “하지만 사람들이 아직도 그 공간을 100%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토 씨의 건축은 미국의 심포니 록 밴드 ‘레이철스(Rachel’s)’의 앨범 ‘시스템스/레이어스’에 영감을 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이번 콘퍼런스에서 ‘자연을 밀어내는 한국의 도시 건축’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자연을 배제하며 획일적 용도의 건축 공간을 대량 생산하는 한국의 도시에 있어 이토 씨의 건축 철학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는 목적이 제한된 공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연에는 목적이 없죠. 대만의 새 오페라하우스는 공연이 건물의 홀 안에 머물지 않고 자유로운 거리 공연으로 통하는, 자연과 연결된 공간이 될 겁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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