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자연에 젖은 시골여인,그리고 성장통…‘하우스키핑’

  • 입력 2008년 3월 22일 03시 00분


◇ 하우스키핑/메릴린 로빈슨 지음·유향란 옮김/312쪽·1만2000원·랜덤하우스

이 책은 천천히 읽어야 한다. “반전이나 액션이 없어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두 번째 읽으면 갑자기 재미있는 이야기와 정교하게 짜여진 구조가 드러난다.”(평론가 김성곤 서울대 교수).

‘미국의 송어낚시’나 ‘월든’ 같은 명작처럼 이 소설도 미국의 전원에 빚진 작품이다. 엄마가 떠난 뒤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루스와 루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외고모할머니에게 맡겨졌다가 막내 이모 실비에게로 옮겨갔다. 서부 지방의 핑거본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산과 호수에 둘러싸여 살아가면서 자매는 가족의 부재를 채워주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젖는다.

소설의 주요 내용은 여성들의 성장기다. 핑거본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과 달리 동생 루실은 “발전해야 한다”면서 어느 날 핑거본을 떠난다. 실비 이모는 남은 루스가 ‘성장하지 않는 존재’가 되길 바란다. 그러나 루스와 실비 이모가 결국 핑거본을 떠나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날이 온다.

작가는 인간과 문명을 능가하는 자연의 힘을, 아름다움을 소설 곳곳에서 묘사한다. 자연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마음의 상처를 품기도 하고, 더욱 큰 고독감에 빠뜨리기도 한다. 인물들은 그러면서 자라간다.

흥미진진한 사건이 있는 게 아니어서 지루하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도리스 레싱(200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말처럼 한 문장 한 문장이 즐거움을 준다. 시적인 문장들을 차분하게 음미하다 보면,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성장통의 아픔이 어느 순간 진하게 느껴진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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