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경당은 조선 왕실 첨단극장”

  • 입력 2008년 2월 28일 02시 55분


사진실-김봉렬-윤정섭 교수 건축학적 비밀 풀어

“창덕궁 연경당(演慶堂)은 살림집이 아니라 치밀하게 구성된 조선시대의 대표적 왕실 전용 극장이었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창덕궁 연경당(1827년 창건)의 건축적 비밀이 풀렸다.

전통 공연예술사학자인 사진실 중앙대 교수, 건축사학자인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무대미술 연구자인 윤정섭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최근 ‘전통예술무대 양식화 심포지엄’에 발표한 논문 ‘순조 대(純祖 代) 연경당의 복원 연구’를 통해 연경당의 특징과 구조에 관해 새로운 연구 성과를 내놓았다. 연경당의 건축적 특징과 구조를 체계적으로 밝혀낸 것으로, 연경당의 실체를 둘러싼 논란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 연경당에 얽힌 비밀들

연경당은 순조 때인 1827년 효명세자(1809∼1830)가 창덕궁 후원에 창건한 건물. 이듬해 어머니인 순원왕후의 생일 축하 진작(進爵·경축 행사 때 왕과 왕비에게 술잔을 올리는 의식) 행사와 각종 정재(呈才·궁중 행사용 춤과 노래) 공연이 거행됐다. 경축(慶祝)행사를 연행(演行)한다는 의미에서 연경(演慶)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세기 각종 의식을 거행했던 곳이지만 연경당이 궁궐 건물로는 예외적으로 살림집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의 의문을 자아냈다. ‘조선시대 궁중 연회는 모두 정전(正殿)과 같은 공식 집무 공간에서 열렸는데 왜 하필 살림집에서 궁중 연회가 열렸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왕과 왕비가 신하들의 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사대부 주택을 모방해 지었다” “대군이나 공주의 궁궐 밖 거처를 옮겨놓은 것”이라는 추측까지 나왔다. 특히 국보 249호 ‘동궐도’(1820년대 제작된 창덕궁 창경궁 그림)에 나오는 연경당(ㄷ자형)과 지금의 연경당이 서로 달라 연구자들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최근 연경당에서 궁중 연회 재현 행사가 열리기도 했지만 왜 이곳에서 연회가 열려야 하는지 등 그 실체에 대한 의문은 여전했다.

○ 연경당은 완벽한 구조의 전용 극장

사 교수 등 세 명의 연구자는 ‘동궐도’와 의궤(각종 왕실 행사를 그림으로 표현한 책) 등 19세기 자료와 현존 연경당의 구조를 검토해 연경당의 건축적 특성, 극장으로서의 구조, 무대 미술과 공간 운영의 원리를 밝혀냈다. 그 결론은 ‘ㄷ자 본채는 객석이 되고 마당은 크기 조절이 가능한 무대로 활용되는 전용 극장 건축’이라는 것. 사 교수 등은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했다.

△동궐도 속 연경당의 ㄷ자형 구조=ㄷ자형 구조는 기(氣)가 빠져나간다 하여 전통적으로 기피했던 구조로, 살림집에 어울리지 않는다. 연경당은 살림집일 수 없다. △마당의 박석(薄石·넓적한 돌)과 단의 높이가 다른 두 개의 문=무대를 설치하기에 좋고 두 개의 문은 행사에 잘 어울리는 구조다. △남쪽의 조립식 담장=필요할 때 대규모의 행사장으로 사용할 수 있다. △ㄷ자 본채의 좌우 건물=반투명 차일과 주렴(珠簾·발)을 설치해 무대 조명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기능을 한다.

이런 건축적 특징으로 보면 연경당은 ‘객석(ㄷ자형 본채)이 무대(마당)를 3면에서 감싸는’ 구조로, 공연에 적합한 공간이다. 이들은 이번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창건 당시 연경당의 건물과 그곳에서 열리는 공연 장면을 영상물로 제작했다.

사 교수는 “순조 대의 연경당(동궐도 속의 연경당)은 어느 시점에서 현존 연경당으로 고쳐지면서 살림집 형태로 바뀌었다”며 “그러나 순조 대 연경당의 극장 구조가 일부 보존되어 있어 복원에 참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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