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 불교 + 에로티시즘 닮은 듯… 또 다른 듯

  • 입력 2008년 1월 29일 02시 59분


사제지간 최영림 - 무나카타 시코展

목가적 서정주의를 대표하는 최영림(1916∼1985)과 그의 일본 유학 시절 스승이자 일본 현대 판화의 대부인 무나카타 시코(1903∼1975). 두 작가의 유화 판화 드로잉 등 120점을 비교 감상하는 ‘최영림·무나카타 시코’전이 3월 30일까지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다. 덕수궁미술관이 일본 아오모리현립미술관과 공동 기획했다. 지난해 말 무나카타의 고향인 아오모리 전시를 마치고 서울로 옮겨왔다.

두 사람은 양국 미술계에서 독자적 화풍을 이룩한 작가로 평가된다. 1층의 최영림, 2층의 무나카타 전시장을 둘러보면 닮은 듯하면서도 확실히 구별되는 차이점을 알 수 있다. 기혜경 학예연구사는 “공통점은 전통에 맥락이 닿아 있고, 이상적 여인상과 불교적 소재를 작품으로 형상화했다는 것”이라며 “최영림이 한국적 해학미가 담긴 건강한 에로티시즘을 구현했다면, 무나카타는 장식적이고 화려한 에로티시즘의 세계를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교류한 서신도 전시하고 있다. 이케다 도루 아오모리현립미술관 학예연구원은 “편지들은 이들이 서로에게 품었던 존경과 우정을 증명하는 것이자, 무나카타가 한국 미술에 대해 가졌던 외경심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 한국의 토속성과 낭만성-최영림의 재발견

이번 전시는 박수근 이중섭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최영림의 진면목을 재발견하는 기회다. 평양 부호의 아들로 태어난 최영림은 미술학도를 꿈꾸며 평양박물관 학예원으로 근무하던 오노 다다아키라에게서 그림을 배운다. 고교 졸업 후 오노의 소개로 그의 고향 동료인 무나카타를 찾아가 판화를 배우면서 사제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집안의 반대로 2년 만에 귀국하고, 6·25전쟁을 전후해 가족을 남겨 둔 채 남하한다.

전시에선 월남 이후 작고할 때까지 그린 작품을 ‘흑색시대’ ‘황토색시대’ ‘설화시대’로 나누어 보여 준다. 1950년대 중·후반 ‘흑색시대’에선 월남의 아픔을 검은색 화면으로 표현했다. 이어 황토색시대에서는 모래와 토담의 흙을 작품에 섞어 민화 속 호랑이나 심청전을 그려 낸다.

1960년대 후반부터 그는 풍만한 여성 이미지나 민담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해학적이고 활달한 붓 터치로 그려 냈다. 여성과 낙원 이미지를 결합한 ‘꽃바람’ 등은 에로틱한 여성 이미지이면서 따스하고도 온화한 정감이 느껴진다. 새색시를 힐끔거리는 신랑(경사날)이나 너털웃음을 짓는 듯한 호랑이(호랑이 이야기) 등은 친근함과 웃음을 전해 준다.

○ 일본 전통의 현대적 계승-무나카타 시코

무나카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다. 우연히 접한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전통 목판화 기술을 습득해 흑백의 대비가 두드러진 작품세계를 정립했다.

베니스 비엔날레(‘두 보살과 10대 제자’ 등)와 상파울루 비엔날레 대상(‘엔젤스’ 등)을 수상하면서 세계적 작가로 인정받았다. 토속적 이야기, 불교적 모티브를 다룬 그의 작품은 일본 특유의 패턴화한 장식미를 바탕으로 현대적 미감을 살린 것이 특징. 커다랗고 동그란 얼굴의 미인도를 통해 신선한 에로티시즘을 표현하기도 했다.

관람료 어른 40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2000원. 02-2022-0600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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