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사건들을 맞춰 보라, 역사는 거기 있다

  • 입력 2007년 12월 22일 02시 55분


코멘트
◇ 역사학의 철학-과거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이한구 지음/620쪽·2만5000원·민음사

역사 연구는 현재 관찰할 수 있는 증거에 의존한다. 그런데 과거는 일부 사건만 증거를 남긴다. 그 일부로 과거 세계 전체를 재구성하는 것은 불완전한 조각들로 전체 그림을 맞추는 것과 같다. 그 그림이 본래 모습과 똑같다고 할 수 있을까.

역사 서술의 상대주의를 견지하는 탈근대주의 역사학은 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역사 서술이 실제 세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인지, 관심과 필요에 따라 역사 세계를 재구성하는 것인지를 묻는 것은 역사 인식론의 오랜 쟁점이다.

탈근대주의가 유행하는 요즘에는 역사 서술의 상대주의가 힘을 얻고 있다.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런 상대주의를 비판하며 객관적 역사 서술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주장의 핵심은 그가 빗댄 ‘지도 그리기’에 잘 나타난다. 지도는 땅의 모양새를 그대로 재현해 보여 주는 것이다. 객관적 역사 서술은 정확한 지도를 그리는 것과 같다. 지도를 정확히 그리기란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자료가 제한될수록 전체 지도는 더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이 이 때문에 정확한 지도 그리기를 포기하고 지도는 제멋대로 그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거나 지도의 정확성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아예 지도 그리기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시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도를 정확히 그리기 어렵다고 정확한 지도를 그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마찬가지로 과거 세계를 제대로 재현하기 어렵다고 주관적으로 역사를 창작하거나 날조하면 역사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저자의 주장은 역사란 객관적 재현이 가능하며 이를 위해 모든 관점을 배제하고 사실 자체를 탐구하자고 말한 19세기 독일 역사가 레오폴트 폰 랑케의 연장선상에 있는 걸까.

아니다. 저자는 랑케와 달리 관점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객관적 역사학을 정당화할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할 수 있지만 이것이 역사를 제멋대로 해석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라고 말한다. 객관성이 하나의 관점 아래서만 가능하다는 통념이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여러 역사관을 비교해 가장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역사관을 선택할 수 있는 이성의 힘을 믿는다.

인문학에서 조선시대 문화사 연구 등 역사 연구가 ‘유행’인 요즘, 이 책은 역사를 어떻게 인식해야 할지 곱씹어 보게 한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