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시대?… 지금 성적 3, 4년 유지해야죠”

  • 입력 2007년 12월 13일 02시 59분


코멘트
이세돌(24) 9단은 10일 윤준상 6단을 꺾고 국수위에 등극한 뒤 집에 돌아와 생후 15개월 된 딸 혜림을 안아 올리며 “아빠가 국수됐다. 돈도 많이 벌었지”라고 말하며 기쁨을 나눴다. 반상에선 상대의 대마를 때려잡는 냉혹한 승부사지만 집에선 한없이 자상한 아버지로 변하는 이 9단.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그가 최근 좋은 성적을 내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이 9단은 이번 국수전 우승으로 명실상부한 국내 1인자 자리에 올랐다. 현재 국내외 대회 7관왕에 LG배 삼성화재배 세계대회 결승에 올라 있다. 바둑계에선 ‘이세돌 시대’가 활짝 열렸다고 진단한다.

▽‘쎈돌’의 바둑 이야기=바둑 팬이 보는 이 9단 바둑의 매력은 재미있다는 것. 이창호 9단의 바둑이 완성도 높은 교양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라면 이세돌 9단의 바둑은 스릴 넘치는 추리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그의 바둑에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복잡함, 엉뚱한 곳에서 터져 나오는 해결의 실마리, 예측 못한 반전 등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사건 해결’(대국 승리)까지 바둑 팬들은 지겨울 틈이 없다.

극적인 바둑이 많다 보니 그가 불계승을 거두는 비율이 다른 기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올해 거둔 81승 중 58승이 불계승. 그와 비슷한 기풍인 목진석 9단의 경우 90승 중 31승만 불계승이었다.

그는 “이창호 박영훈 9단처럼 끝내기가 세지 않으니까 종반이 오기 전에 끝내려고 노력하다 보니 불계승이 많은 것”이라며 웃었다.

드라마틱한 바둑을 두는 만큼 그의 바둑은 기세를 많이 탄다. 한번 기세를 타면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강하지만 기세가 꺾이면 급속히 하강 곡선을 타기도 한다. 승부욕이 강한 이 9단은 중요한 대국에서 진 뒤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2003년과 2004년도의 부진이 그 때문이었다.

“요즘은 두면 이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기세를 탄 것 같아요. 이럴 때는 대국 일정이 많은 게 좋죠. 다만 제가 조심하는 건 기세를 한 번에 잃지 않도록 컨디션을 조절하는 거죠.”

‘이세돌 시대의 개막’이라는 주변의 평에 대해 소감을 물었다. “올 1년 성적이 좋다고 해서 제 시대가 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 같은 성적이 3, 4년은 유지돼야 비로소 1인자가 됐다고 할 수 있죠.”

‘쎈돌’ 9단의 형 이상훈 6단이 이런 겸손함의 배경을 설명해 줬다.

“이창호 9단 때문이죠. 지금은 부진하지만 정상 컨디션이라면 아직 자신이 2% 정도 부족하다고 느끼나 봐요. 정면승부를 통해 이창호 9단을 넘어야 1인자라고 생각할 거예요.”

▽‘쎈돌’의 가족 이야기=주변에선 이세돌 9단이 2006년 2월 동갑내기 김현진 씨와 결혼한 뒤 바둑 성적이 좋아졌다고 평한다. 총각 시절 폭음 습관 등 무절제한 생활이 결혼 후 많이 사라지면서 안정을 찾았다는 것이다.

아내 김 씨는 “결혼 전엔 무뚝뚝한 스타일이어서 반은 포기했는데 결혼한 뒤 되레 다정다감해졌다”며 “얼마 전엔 중국리그 참석차 중국에 다녀오다가 공항 면세점에서 명품 지갑을 깜짝 선물로 사왔다”고 말했다. 결혼 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돌을 놓고 일단 집에 오면 그는 꼼짝 안 하는 스타일이다. 주로 안방에서 누워 인터넷으로 다운받은 무협지를 즐겨 읽는다. 그러나 딸 혜림이를 돌보는 일만은 다르다.

“집사람처럼 돌보진 못하지만 많이 놀아 주려고 합니다. 동화책도 재미있게 읽어 줍니다.”

그는 인터넷 동요 사이트에 나오는 수십 곡의 동요를 거의 외워 딸에게 율동과 함께 불러주기도 한다.

그는 올해 7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이는 대회 상금 수입을 모두 아내에게 맡기고 수시로 용돈을 타서 쓴다. 한 번에 20만∼30만 원 정도. 한 번 받으면 일주일을 버티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예상외로 알뜰파였다.

▽‘쎈돌’의 제자 키우기=요즘은 대국이 없는 날이면 형 이상훈 6단과 함께 운영하는 바둑도장에 나간다. 그는 30명의 제자를 가르친다. 자신이 둔 바둑 복기를 해 주거나 2, 3점 접고 지도기를 둬 준다.

보통 후진 양성은 은퇴 기사나 성적과 무관한 기사들이 하는데 1인자인 그가 직접 나선 것은 드문 일. 좋은 성적을 내려면 바둑에만 집중해야 한다며 후진 양성에 반대하는 선배들도 많았다.

그의 생각은 다르다. “가장 성적이 좋을 때 가르쳐야 얘들도 배우는 게 더 많겠죠. 또 얘들과 바둑을 두다 보면 저도 배우는 게 많아요.”

그가 7월부터 제자 키우기에 본격 나선 것은 중국 때문이었다.

“중국리그에 출전해 그쪽 신예 기사의 바둑을 보면 실력이 뛰어납니다. 바둑 시장은 한국보다 중국이 더 커요. 여기에 실력마저 밀리면 한국 바둑계는 몰락하고 맙니다. 그래서 제 손으로 한국 바둑계를 이끌어 갈 기사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는 도장에 나가 아이들을 보면서 한 가지 아쉬움을 느낀다고 했다. 자기가 어릴 적 권갑용 바둑도장에서 공부할 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시켜야 하는 척하고 목표의식도 부족하다는 것.

“처음엔 별 말 없이 넘어갔는데 요즘은 심한 경우 야단도 칩니다.”

그의 말을 듣다 보니 바둑만 잘 두던 천방지축 소년이 갑자기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