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통계를 꿰뚫어라 세상사가 잡힌다

  • 입력 2007년 12월 8일 03시 01분


코멘트
◇통계의 미학/최제호 지음/308쪽·1만3000원·동아시아

통계책을 보면 늘 인용되는 말이 하나 있다. “세상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벤저민 디즈레일리 전 영국 총리가 말했다고 알려진, 통계의 함정을 지적한 명언이다. 그만큼 통계를 믿지 말란 소리다.

그렇다면 질문 하나. 그런 거짓말을 우리는 왜 그리 빈번히 이용하는가. 온갖 정부 통계부터 대선을 앞둔 후보들의 지지율, TV 시청률, 로또 당첨 확률까지. 서울대 통계학 박사 출신으로 한 기업의 임원인 저자는 말한다.

“통계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숫자 계산에 대한 무지 또는 오용이 거짓말 통계를 만든다. 올바른 판단은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사실은 숫자로 표현될 때 객관적으로 관찰된다.”

현대 사회에서 정보와 데이터의 양은 가히 ‘쓰나미’에 가깝다. 그렇다고 넋 놓을 수만은 없는 노릇. 자료를 처리하고 적시에 최선의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 분석과 판단의 유용한 도구가 통계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통계적으로 사고하는’ 힘이다.

‘통계의 미학’은 “통계학 교과서나 통계적 기법 사용 매뉴얼이 아니다.”(황규진 누리혁신연구소 이사) 통계를 ‘세상을 움직이는 과학’으로 본다. 그 복잡한 통계를 보고 읽고 이해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거짓말 같은 통계에 숨겨진 이면을 간파하자고 제안한다.

무엇보다 책의 사례들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복잡한 용어나 수학공식은 최대한 피해 간다. 자료 수집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대목. “간을 맞추기 위해 국을 다 마실 필요는 없다.” 일목요연하다. 모집단(솥 전체)에서 정확한 표본(국자)의 간을 보려면 국자를 휘저어야(무작위성) ‘대표성’을 띤다. 한번 국자로 뜬 국의 맛만 보며 싱겁다고 소금을 계속 넣을 수도 없다. 통계의 타이밍과 연속성에 대한 지적이다.

이는 2004년 EBS 수능 교육을 둘러싼 공방전에 그대로 적용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전체 고교생 중 66%가 방송을 활용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은 EBS 인터넷서비스 접속 자료를 근거로 11.3%만 듣는다고 발표했다. 똑같은 방송을 놓고 6배나 차이 나는 이유는? 교육부는 사교육 경감 효과를 홍보하려고 학교의 단체 시청, 어쩌다 한 번 듣는 학생 수까지 모두 포함했다. 민노당은 그에 반박하기 위해 ‘주 1회 이상 시청하는 학생’으로 범위를 너무 좁혀 버렸다. 통계의 표본에 관한 치열한 머리싸움이었다.

올해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도 그랬다. 이명박 후보 측은 ‘대통령 후보로 누가 더 좋겠느냐’는, 박근혜 후보 측은 ‘누구를 뽑겠느냐’는 설문을 고집했다. 이 후보는 소극적 지지자까지 포함시키고 싶었고, 박 후보는 적극 지지자만 따지길 원했던 것이다.

실생활 사례로 평균의 허구를 보여 주는 점도 솔깃하다. 아이를 운동선수로 키우고 싶은 부모들에게 프로야구 선수의 평균 연봉이 6790여만 원이란 소식은 반갑다. 하지만 프로야구 선수의 51%가 연봉 3000만 원 미만이다. 1억 원이 넘는 선수는 10% 남짓.

평균이 가진 위험을 더 확실히 알아보자. ‘1992년 현대 계동 사옥에 3000명이 근무한다면, 이들의 평균 재산은 얼마일까.’ 당시 정주영 회장은 대선에 출마해 재산이 3조 원이라 밝혔다. 이 경우 나머지 2999명이 무일푼이어도 3000명의 평균 재산을 따지면 10억 원이다. 평균이 이처럼 엉터리일 수 있으므로 중간값이나 최대치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저자가 통계의 모든 것을 정리하진 않았다. 쉽게 설명하다 보니 슬쩍 건너뛰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것도 통계적인 판단이다. 온갖 용어를 끄집어내 구구절절 얘기할 것인지, 통계를 어렴풋이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요긴한 핵심만 건져낼 것인지. 시중에 많은 세세한 통계 개론서에 비해 “통계적으로 사고하고 방법을 찾아라”는 대목이 이 책이 달라 보이는 지점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