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청소년 심리]‘마이걸’ 사춘기소녀의 ‘신체화장애’

  • 입력 2007년 11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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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검사에서 아무 이상이 없는데 다양한 증상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많다. 우울, 분노, 불안 등은 두통, 복통, 구토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심리적 원인에 의한 신체의 아픔을 ‘신체화 장애’라고 한다. 꾀병과는 분명 다르다.

영화 ‘마이걸’에서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 베이다는 신체 증상을 자주 호소한다. 장의사인 아빠, 삼촌,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함께 사는 베이다는 동네 의사에게 달려가 “3년 전 목에 걸린 닭 뼈가 아직도 있다”고 호소한다.

엄마는 베이다를 낳던 중 숨졌다. 시체를 만지는 아빠는 늘 무표정하다. 할머니는 전혀 반응이 없다. 베이다는 늘 외롭다. 아빠의 관심을 끌려고 ‘아프다’고 호소한다. 아내를 잃은 뒤 가족들과도 감정적으로 격리된 채 무덤덤하게 사는 아빠는 딸의 호소에 관심이 없다.

“아빠, 내 왼쪽 가슴이 오른쪽보다 빨리 자라요. 암인 것 같아요. 난 죽을 거예요.”

“그래, 아가. 냉장고에서 마요네즈 좀 꺼내오렴.”

베이다는 엄마를 잃은 슬픔과 외로움을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자신으로 인해 엄마가 죽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죄책감을 몸으로만 호소한다.

아빠가 미용사 셀리에게 관심을 보이자 아빠마저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질투심을 느낀다. 짝사랑했던 작문 선생님의 결혼 소식도 듣는다. 유일한 친구였던 이웃집 토마스마저 자신이 숲 속에서 잃어버린 반지를 찾아 주다가 벌에 쏘여 급성 알레르기 반응으로 죽는다. 연이은 상실로 인해 베이다는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밖으로 터뜨리게 된다. 베이다는 자신이 엄마를 죽였는지를 아빠에게 묻고,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는 대답을 듣는다.

아빠 역시 딸에게 아빠의 사랑이 얼마나 필요했던가를 깨닫고 딸을 따스하게 안아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 있지만 그 슬픔을 드러낼 때 위로받고 추억을 지닐 수 있다는 걸 깨달은 베이다는 “난 마침내 닭뼈를 삼켰다”고 말한다.

뚜렷한 의학적 원인이 없이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아이들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심리적 갈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해해 주어야 한다.

혹시 이런 자녀가 있다면 부모들은 아이가 아프다고 할 때보다 그런 소리를 하지 않을 때 더 칭찬해 주고 관심을 보여야 한다. 아이들은 충분히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 점차 신체 증상을 덜 호소하게 된다.

우리는 마음속에 슬픔이나 고통스러운 감정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그러한 감정들을 충분히 표현해 덜어 내야 그 비워진 마음에 기쁨이 찾아오고 채워지게 된다. 슬프거나 화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이유다.

신민섭 시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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