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무지에 대한 불감증… ‘블라인드 스팟’

  • 입력 2007년 11월 1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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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인드 스팟/매들린 L 반 헤케 지음·임옥희 옮김/336쪽·1만3000원·다산초당

제목 ‘블라인드 스팟(Blind Spot·맹점)’은 자동차 사이드미러에서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를 말한다. 사이드미러에는 가깝게 다가선 차가 보이지 않는다. 크고 작은 자동차 사고의 원인이 블라인드 스팟과도 연관이 있다.

저자는 인간이 사물이나 세계를 인식하는 데도 수많은 블라인드 스팟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제대로 인정하고 극복해야 ‘사고’를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임상심리학자인 저자는 인간의 맹점을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결점은 보지 못한다’ 등 10가지로 분류해 그것을 유발하는 심리적 메커니즘과 사례, 대응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인간은 오만 어리석음 무지 편견 탐욕 이기심 등 때문에 가치관이나 믿음의 체계에 치명적인 오류를 안고 산다는 것이다. 특히 이로 인한 맹점은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이나 국가의 차원으로 확대돼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집단 차원의 맹점은 이런 것이다.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체성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면서 상대에 대한 잔혹한 행동마저 서슴지 않는다. 수많은 종교 전쟁이나 종족 분쟁 등이 그렇다. 9·11테러 이후 미국인은 자신의 오만이 테러의 한 요인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일상도 인식의 맹점을 유발한다. ‘물이 있다는 사실을 가장 나중에 알게 되는 건 물고기’라는 중국 속담처럼, 일상은 우리의 눈을 가리는 장막이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주인공이 우체부 복장을 하고 사기를 치는 대목에서 우체부 복장에 익숙한 나머지 사기에 협조한 사람들이 그런 사례다.

저자는 또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보편적 생각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심리적 지향이야말로 무지에 대한 불감증을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이에 휘말리면 ‘모른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주관적 편견이 참다운 인식을 가로막는 사례도 솔깃하다. 저자는 대학원생 강의에서 ‘양극단의 관점’이라는 보고서를 내라고 했더니 자신과 다른 관점을 조사해야 할 학생들이 거세게 반발하거나 의혹을 품더라는 것이다. 저자가 낸 과제는 기독교인이 신흥 종교인 사이언톨로지를 연구하거나, 낙태에 찬성하는 여성이 낙태의 문제점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저자가 결론 삼아 내린 당부는 평범하다. 자신의 무지를 돌아보고, 타인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인식의 한계를 광범위하게 다룬 나머지 산만하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우리가 왜 무지할 수밖에 없는지를 다시 한 번 일깨우는 책이다.

허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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