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께 1mm, 숨결에 바스라질까 ‘조심 또 조심’

  • 입력 2007년 11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126호) 제작 시기의 비밀을 풀 열쇠로 생각돼 온 묵서지편(墨書紙片·문서 뭉치)이 판독됐으나 다라니경의 제작 시기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본보 10월 29일자 A21면 참조

▶ 제작시기 논란 석가탑 다라니경 “고려보단 통일신라 가능성 커”

다라니경 제작 시기는 영원히 미궁으로 빠져 들까. 단정하긴 아직 이르다.

1966년 석가탑에선 다라니경과 묵서지편만 나온 게 아니다. 다라니경이 있던 금동제사리외함과 사리함 밑의 묵서지편 바로 아래 최고급 고대 직물이 숨어 있었으나 지금껏 베일에 가려 있었다. 직물이 흙과 함께 떡처럼 굳어 있어 실체를 알 수 없었던 것. 이 직물은 ‘잡물(雜物)’로 분류돼 41년을 수장고에서 숨죽여 기다려 오다가 올 8월 말 보존 처리가 시작되면서 ‘오래된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차 보존 처리 결과 흙덩이처럼 보였던 ‘잡물’은 최근 당대 최고급 비단인 나(羅) 능(綾) 주(紬) 등으로 밝혀졌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 천주현(서화류 담당) 연구원은 “석가탑 말고 고대 직물이 이토록 온전한 모습으로 나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고대 직물의 재질 제작기법 무늬를 분석해 문헌과 비교하면 다라니경 제작 시기의 비밀을 풀 단서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물관은 유물 손상을 우려해 보존 처리 현장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으나 2일 처음 본보에 문을 열었다. 고대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 내고 있는 은밀한 현장으로 들어갔다.

석가탑 유물 보존처리실은 숨 막힐 듯 정적이 흘렀다. 보존과학팀 천 연구원과 박승원(직물류 담당) 연구원은 흙더미에서 떼어낸 데 이어 여러 겹으로 접힌 직물을 반듯이 펴는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직물의 두께는 1mm가 채 되지 않는다. 1000년 이상 흙, 빗물과 싸우며 딱딱하게 굳었고 극도로 약해진 섬유는 아주 작은 충격에도 한순간에 부스러진다. 사람의 숨결에 날아갈 정도여서 마스크는 필수. 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예민해진 연구원들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작업 시간엔 문을 걸어 잠근다.

두 달간 연구원들은 ‘손대면 사그라질 듯한’ 유물들을 흙더미에서 하나하나 분리해 냈다. 얇고 기다란 나무 도구로 직물을 흙에서 천천히 들어 올린다. 직물 형태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섬유가 끊어지면 끝장. 직물을 분리하는 손놀림은 조심스럽고 느리다.

천 연구원은 “작업 동안 습도를 60∼65%로 유지하지 않으면 직물이 딱딱해져 부스러져 버린다”고 말했다. 최대한 직물의 원형을 찾기 위해 작은 조각까지 흙에서 일일이 찾아 형태를 맞춘다. 연구원들이 “고대 퍼즐 맞추기 놀이”라고 농담한다.

직물 조각마다 묵서(墨書)가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직물에 쓰인 글씨는 묵서지편에 쓰인 봉안품 목록과 비교할 중요한 단서라 놓쳐선 안 된다”는 게 박 연구원의 설명이다.

두 달간 작업 끝에 고대 직물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잡물’은 실상 7겹의 직물이었다. 이 중 묵서지편을 2겹으로 쌌던 직물을 찾아냈다. 금동제사리외함을 쌌던 직물에선 함 테두리 흔적도 선명했다. 이 직물엔 곡선과 원형으로 이뤄진 무늬가 있어 주목된다. 무늬는 시대별로 다른 패턴을 나타내므로 무늬를 최종 확인하면 다라니경 제작 연대에 귀중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묵서지편, 보협인다라니경 재질을 분석해 다라니경과 비교하면 제작 시기의 수수께끼도 쉽게 풀릴 수 있다. 묵서지편의 보존 처리는 이제 시작이다. 박물관은 묵서지편의 두께와 제작 방식, 섬유 조직을 분석한 뒤 현재 낱장으로 분리돼 듬성듬성 구멍 뚫려 있는 묵서지편을 하나의 문서로 이어 복원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