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20(일반관객 몫) 대 80(후원기업 몫)’티켓 불만 있습니다

  • 입력 2007년 11월 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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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하루 열리는 세계 3대 테너 호세 카레라스의 내한 공연은 관객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티켓을 공식 판매하기 전에 이미 전체 티켓의 80%가량을 2개의 후원 기업에 판매했다. VIP석, R석, S석, A석 등 볼 만한 좌석은 이들 기업이 모두 사갔고, 일반 관객은 가수의 뒷모습만 볼 수 있는 합창단석 뒤쪽의 B석만 살 수 있을 뿐이다.

카레라스 공연 티켓을 대량 구입한 후원 기업 중 하나인 HSBC은행은 신종 펀드 상품에 2억 원 이상 가입하는 고객에게 이 공연 티켓 2장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만한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는 음악애호가들은 호세 카레라스의 뒷모습만 봐야 할 처지다.

우수 고객 관리와 기업 이미지 마케팅 차원에서 권장되는 기업의 공연 티켓 구입은 공연 시장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공연기획사들이 새로운 관객층 개발에 힘쓰기보다 기업의 ‘문화 접대’를 이용해 손쉽게 매출을 올리려는 태도 때문에 본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기업이 우수 고객을 위한 초대권으로 좋은 좌석을 미리 구입하면서 정작 일반 관객은 티켓을 구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기업들은 좋은 좌석 수백 석을 예매하던 예전과 달리 최근에는 공연 몇 회분의 전체 자리를 사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관객이 배제되고 특정 기업의 고객을 위한 전용 공연이 되는 셈이다.

지난해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정기 연주회 티켓은 판매 전에 매진되는 사례가 여러 차례 발생하기도 했다.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등이 고객 선물용으로 전석을 구매했기 때문이다. 서울시향은 비판이 거세자 3월부터 기업의 전석 티켓 구입을 중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도 몇몇 공연은 전체 티켓의 70%가량을 여러 기업이 공식 판매 전에 구입해 가는 실정이다.

기업의 문화 접대가 공연계에 주는 긍정적 영향도 적지 않다. 마니아로 한정된 국내 클래식 시장의 현실을 고려할 때 기업의 티켓 구매는 공연 활성화를 장려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양창섭 서울시향 홍보마케팅팀 과장은 “정명훈 씨처럼 유명한 인사가 합류할 때를 제외하면 일반 판매로는 1000장 이상 팔리지 않는다. 3000석 규모의 세종문화회관 공연에서 기업의 스폰서 없이는 흥행이 어렵다”며 “일부 관객은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그 수익으로 더 많이 공연을 할 수 있어 전체적으로는 공연계의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클래식 마니아 김재강(38) 씨는 “어떤 공연은 비싼 돈을 들여서라도 좋은 좌석에서 보고 싶은데 티켓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봉쇄된다”며 “이달 중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오페라 ‘라트라비아타’도 좋은 좌석은 대부분 (기업들에) 돌아가 관람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라트라비아타’ 공연 티켓도 좋은 좌석의 상당 부분은 기업들이 구입했다.

일부 공연기획사가 기업의 ‘문화 접대’를 겨냥해 티켓 가격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한다는 비판도 있다. 이번 호세 카레라스 공연 티켓도 30만 원짜리 티켓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기획사들은 대안을 고민 중이다. 9월 ‘빈 슈타츠오퍼’ 내한공연을 주최한 공연기획사 크레디아의 이유은 대리는 “관객들의 불만을 이해하기 때문에 기업 측에 좌석의 일부는 일반 관객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설득하지만 쉽지 않다”며 “앞으로는 가능한 한 공연을 2회로 준비해 1회만 기업에 티켓을 판매할 계획도 구상 중이다”고 말했다.

공연기획사 빈체로의 한 관계자는 “같은 좌석이라도 일반 판매분은 기업 판매분의 70% 정도로 가격을 차등해 팔고 기업 판매분에는 주차 편의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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