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되살려낸 포킨의 ‘춘향’… 화려한 환생 뜨거운 갈채

  • 입력 2007년 11월 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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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안무가 미하일 포킨의 발레 ‘춘향’이 71년 만에 복원돼 고국 무대에서 그 모습을 선보였다. 31일 오후 8시 반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 1부인 포킨의 낭만 발레 ‘레 실피드’에 이어 2부 ‘춘향’이 시작됐다. 막이 오르자 오방색의 아치 무대와 일월도의 배경막이 눈에 띄었다. 》

첫 장면. 원숭이 가면을 쓴 6명의 남자 무용수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등장해 꼬리를 흔들며 뛰노는 사이로 춘향의 아버지 ‘만다린’(원작에서 월매에 해당하는 배역)이 거만하고 우스꽝스러운 걸음으로 등장했다. 포킨은 경쾌한 첫 장면으로 발레 ‘춘향’을 열며 우리에게 친숙한 ‘춘향’의 사랑 이야기를 한바탕 유쾌한 소극(笑劇)으로 만들어 냈다.

‘레 실피드’가 특별한 줄거리 없이 신비하고 몽환적인 춤을 이어간 데 비해 ‘춘향’은 같은 포킨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달랐다.

거장은 어깨의 힘을 빼고, 구체적인 동작과 묘사 등 마임이 많이 가미된 쉬운 안무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관객을 무대로 끌어들였다. 발레는 시종 익살스러웠고 특히 춘향 아버지 ‘만다린’과 춘향을 탐내는 변 사또에 해당하는 중국 대사와 시종들이 웃음을 자아냈다.

후반부에 한 차례 나오는 춘향과 이 도령의 파드되(2인무)는 서정적이었다. 이날 공연에는 발레리나 노보연과 발레리노 이원철이 춘향과 이 도령 역을 맡았다.

본보와 국립발레단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GS칼텍스가 협찬한 이 작품은 1936년 모나코 몬테카를로에서 초연된 포킨의 ‘춘향’(당시 제목은 ‘사랑의 시련’)을 오리지널 안무 그대로 되살려낸 복원 공연이다. 이 작품은 사진 자료만 있고 무보(舞譜)가 없어 복원이 불가능했지만 지난해 본보가 미국 뉴욕 공공도서관에서 흑백 동영상을 발굴함에 따라 포킨 안무를 그대로 복원한 공연이 이뤄지게 된 것.

30분간의 ‘춘향’ 공연이 끝나자 원작 복원 작업을 담당한 안무 트레이너 아이리 하이니넨 씨가 무대로 나와 인사했다. 박수가 짧았던 ‘레 실피드’와 달리 관객은 71년 만에 고국에 온 ‘춘향’을 다섯 차례의 박수와 환호성으로 따뜻하게 맞았다.

이날 공연을 본 발레리나 강예나 씨는 “현란한 기교와 자극적인 공연에 익숙해져 있다가 마치 무성 영화 스타일의 아기자기한 러브 스토리를 본 것 같은 신선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관객 정상현(42) 씨는 “무용을 모르는 사람도 극 내용을 금방 이해할 수 있어 아이들을 데려와 보여 줘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혜식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장은 “춤에서 중국적인 느낌이 풍기고 내용도 우리 춘향과 많이 다르지만 거장의 발레를 손대지 않고 원작 안무 그대로 복원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며 “내용이 쉽고 단순해 가족 발레 레퍼토리로 발전시켜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공연은 3일까지. 오후 7시 반. 2만∼10만 원. 02-587-6181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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