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의 상처는 깊고도 슬프다…김연수 새 장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입력 2007년 10월 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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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봄에 그는 입대를 앞두고 고향에 머물고 있었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강경대가 죽었다”며 친구는 흐느꼈다. 어떤 시간은 앞선 시간과 결코 같을 수 없다. 그가 바로 그 시간을 지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시간이 지난 뒤였다.

김연수(37) 씨가 장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문학동네)을 냈다. 하반기 기대작으로 일찌감치 꼽혔던 작품이다. 젊은, 그러나 등단 햇수론 14년째에 이르는 이 작가는 최근 수년간 굵직한 문학상을 차례차례 수상하면서 스타가 됐다. 이번에 내놓은 새 소설은, 1991년 ‘5월 투쟁’을 지나던 한 대학생의 이야기다. 그때 대학생이었던 사람들에게는 어떻게든 상처가 되었을 시간. 그 이전과 이후가 결코 같지 않은 시간.

“글을 쓰는 사람들은 ‘여분의 존재’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속에서 직접 ‘운동’하지 못하는 사람, 사후(事後)에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나는 작가로서 오랜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 얘기는 ‘네가 누구든…’이 작가의 개인적 체험에서 약간 벗어나 있음을 가리킨다. 실제로 1991년 친구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는 분노보다 당혹감을 먼저 느꼈다. 학생회 투쟁국장인 소설의 화자와 달리, 작가가 운동에 직접 몸담았던 건 아니었다. 그 시간의 충격은 더디게 왔지만 오래도록 그를 괴롭혔다. 이전까지 선악은 이데올로기를 기준으로 확실하게 갈렸지만, 이후에는 무엇이 선한지 악한지 알 수가 없게 됐다. 그리고 그는 작가가 됐다.

화자는 학생예비대표 자격으로 베를린으로 건너가지만, 학생 지도부의 붕괴로 잊힌 존재가 된다.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북한에 가게 될지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다. 그런 그가 베를린에서 적어 가는(독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그처럼 시간의 충격을 겪고,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삶이 달라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바다를 메우려는 포부를 가졌다가 간첩조작 사건으로 시체처럼 돼 버린 화자의 할아버지, 1960년대 모범적인 고교생이었다가 경찰의 폭행에 휘말려 인생이 망가져 버린 정민(여자친구)의 삼촌, 떠돌이 일용직 노동자였다가 1980년 광주의 시인이 되고, 이어 천재적인 문화운동가로 변신하는 이길용….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의 에피소드처럼 보이던 이야기는 마지막에 퍼즐처럼 맞아떨어지는 커다란 그림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이 그림을 우르르 무너뜨릴 수 있는, 실은 이 모든 얘기가 거짓말일 수 있다는 암시를 넣어 두었습니다.”

이 정교한 작가가 왜 그런 일을? “가령 80년 광주를 두고 간첩의 선동으로 인한 폭동이라는 말도 나왔어요. 시간이 지난 뒤 거짓말이 된. 나는 그 거짓말도 그 시대를 온전하게 규정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꼼꼼한 문체인데도 잘 읽히고 ‘김연수 소설답지 않게 꽤 야하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대담한 묘사도 있다. 그렇지만 작가가 결국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람마다 이야기는 다르지만 인생에 대한 주제는 동일하다는 것, 모두의 이야기는 동시에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1991년 개인적 상처의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성찰의 결과다. 소설은 어떤 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이 속한 한 시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이라는 거대한 거짓말은 그 소설이 쓰인 시간의 진실이 될 수 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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