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조롱받던 ‘인간의 몸’…유머-과학 버무린 고찰

  • 입력 2007년 9월 22일 02시 42분


코멘트
◇아담의 배꼽/마이클 심스 지음·곽영미 옮김/560쪽·2만2000원·이레

잘 버무린 비빔밥 같은 책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인체를 샅샅이 탐구한 자연과학적 설명과 몸의 문화사가 적절히 섞였다. 문학, 예술, 영화, 시, 종교, 철학, 드라마를 넘나들며 숭배 멸시 조롱의 대상이었던 인체에 대한 수많은 얘기를 간명하고 유머러스한 문장으로 녹여냈다.

해부학과 진화론이 범벅된 과학 지식이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문헌학 심리학 문학에 투영된 몸 이야기의 향연이 펼쳐진다.

저자는 인간들이 ‘우리도’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고 말한다. 신체 각 부위에 현미경을 들이댄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연과학적 사실만 갖고 몸을 보는 것으론 부족하다고 말한다.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물질의 의미는 물질 그 자체에 있지 않고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있다”는 것이다. 삼손의 머리카락은 ‘두피 속의 소낭에 의해 생겨난 단백질 덩어리가 아니라 신이 연약한 인간에게 자신의 힘을 나눠주기 위한 매개체다’. 그렇게 해서 저자의 말처럼 자연과 문화를 교배한 ‘잡종’이 탄생했다.

저자는 오스카 와일드를 인용해 “세상의 가장 위대한 신비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에 있다”며 내장 기관을 빼고 눈에 보이는 얼굴 윤곽, 이목구비, 어깨, 팔, 손, 가슴, 젖가슴, 배, 배꼽, 허리, 음부, 엉덩이, 다리, 발을 파헤친다.

이 책은 몸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뿐 아니라 편견도 깨 준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은 촉각 외에 다른 감각은 없다. 시각 후각 미각 청각 등 오감이 멀쩡히 있는데 무슨 소리냐 할지 모른다. “초콜릿을 맛보려면 미분자가 혀끝에 닿아야 한다. 음악이 들리는 것은 음파가 우리 귓속의 고막을 두드려주기 때문이다. 커피 향을 맡는 것도 공중을 떠돌아다니던 작은 커피 입자들이 콧속 감각세포를 건드린 덕분이다. 햇빛에 반짝이는 나뭇잎 색을 보려면 우리 눈으로 광자가 들어와야 한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피부 얘기는 악기 연주로 아폴론 신과 내기를 걸었다가 살가죽이 벗겨진 마르시아스의 비극으로 시작한다. 기원전 1세기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는 이 그리스 신화를 두고 “드러난 힘줄, 적나라한 혈관이 요동치고 펄떡거렸다. 불빛이 그의 갈비뼈 속을 비추자 씰룩거리는 내장과 조직들이 훤히 보였다”고 표현했다. 현대의 마르시아스도 있다. 독일 의사 군터 폰 하겐스는 인체에 수분과 지방을 빼내고 특수 플라스틱을 주입해 표본을 만들어 전시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실제 인체를 전시하는 ‘인체의 신비전’을 탄생시켰다. 이 중 살가죽을 외투처럼 오른손에 들고 있는 ‘전시품’은 ‘힘줄, 인대, 팔다리의 근섬유, 달랑거리는 고환, 성기, 배꼽 꽈리를 불그스름하고 기괴하게 드러냈다’.

저자는 프랑스 사상가 폴 발레리를 인용해 “인간은 거죽만 인간일 뿐이다. 피부를 벗겨내면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질 속에서 길을 잃고 네가 아는 모든 것과는 낯설어지되 본질에는 더욱 가까워진다”고 말한다. 피부는 우리의 낯선 본질을 직시하는 교훈을 준다는 것.

‘피부 철학’을 음미할 때쯤, 몸무게 중 피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6%이고, 자외선이 피부의 DNA를 공격하면 염증 세포를 자극하고 혈관을 팽창시키는 효소 단백질을 생성해 피부가 화끈거린다는 자연과학적 설명이 이어진다.

이 책이 선사하는 유쾌한 재미. 수많은 철학자, 소설가, 시인, 과학자들이 쏟아낸 몸에 대한 촌철살인의 명언을 되새길 수 있다는 것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