許生의 율려국, 다들 행복했을까…김종광씨 ‘율려낙원국’

  • 입력 2007년 9월 2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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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1737∼1805)의 ‘허생전’은 큰돈을 모은 허생이 변산의 도적들을 데리고 섬에 가서 먹고살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으로 끝난다. 젊은 작가 김종광(36·사진) 씨는 원고지 12장 남짓한 이 장면에다, 풍부한 상상을 더해 두 권의 책으로 불렸다. 장편 ‘율려낙원국’(예담)이다.

조선 후기 양반의 세태를 고발했던 ‘허생전’이 21세기판 텍스트에서는 돈에 휘둘리는 인간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로 바뀐다. ‘허생의 낙원에서 사람들은 행복했을까’라는 의문에서 이야기가 쓰이기 시작한 터이다. 도적들이 무작정 허생을 따라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낙원에 터를 잡은 뒤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작가의 고민이 새로운 이야기가 됐다. 김 씨 특유의 입담이 유려하게 발휘돼 팍팍 잘 읽히는 이야기다.

소설 ‘율려낙원국’에서 변산의 도적들이 낙원행을 택하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 때문이다. 허생은 수어청 무사와 무뢰배들을 포섭해 도적들과 한판 대결을 벌이고, 모든 것을 잃게 생긴 도적들은 허생에게 투항할 수밖에 없다. 허생을 따라 섬으로 옮겨 가서는 더 많은 문제가 일어난다. 빈부격차, 남녀차별, 신분차별 없는 지상낙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나태해지고 술과 노름, 간통이 난무한다. 낙원은 순식간에 비루하고 지리멸렬한 땅이 돼 버린다.

이 이야기에는 돈과 권력 앞에서 무력한 인간에 대한 작가의 회의가 짙게 배어 있다. 이상(理想)만으로는 지탱해 나갈 수 없는 공동체, 어떤 상황에 다다랐을 때 드러나는 인간의 악한 성품 등 독자 대부분이 뜨끔해 할 문제들을, 작가는 에둘러가지 않고 제시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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