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풍경]망각 속의 그때그시절…‘자장면’책을 읽고 싶다

  • 입력 2007년 9월 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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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5년 전 어느 날, 요즘처럼 초가을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던 때였다. 지호출판사의 장인용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 “자장면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참 매력적인 테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장면처럼 우리네 애환이 잘 담겨 있는 음식도 없으리라. 그러니 자장면에 관한 책이라면 그건 분명 자장면을 통해 본 한국의 근현대 생활문화사가 될 것이다. 자장면 책이 나온다면 무척이나 독특하면서도 생생한 생활사 복원이 되지 않겠는가.

최근 자장면 책만큼이나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다. ‘운동회’ ‘백화점’ ‘박람회’ 이런 제목의 책들이다. 모두 논형출판사의 ‘일본 근대스펙트럼 시리즈’의 하나다. 매우 사사로워 보이는 운동회나 백화점을 통해 이면에 감춰진 역사를 들여다보는 시리즈다. ‘운동회’의 경우, 일본 근대기에 도입된 운동회 행사에 어떠한 정치적 사회적 의미가 담겨 있는지를 탐색한 책이다.

이 시리즈는 번역서이긴 하지만 우리가 놓치기 쉬운 일상의 제도나 시스템을 통해 그 역사와 의미를 되새겨본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기획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박물관, 백화점, 박람회에 대한 연구가 조금씩 늘고 있는 상황이어서 시의도 적절하다.

이 시리즈를 기획한 사람은 논형출판사의 소재두 대표다. 2001년, 그는 10년 넘게 일하던 한 출판사를 그만두고 휴식을 취하러 일본에 갔다. 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는 출판쟁이였다. 일본의 서점들을 돌아다니고 출판인들을 만나면서 ‘19세기 말∼20세기 초 일본 사람들이 어떻게 서양의 근대 시스템을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런 책들을 찾기 위해 도쿄(東京)의 서점을 모두 뒤졌다. 절판되어 구하기 어려운 책까지 찾아냈다. 주오고론(中央公論) 출판사에서 나온 1952년판 ‘철도의 사회사(鐵道の社會史)’를 살 때는 일본 서점 주인에게서 “참 희한한 한국인”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일본에서 1년 반 동안 그렇게 찾아내 구입한 책은 800여 권에 달했다. 지금의 ‘일본 근대스펙트럼 시리즈’가 바로 그때 구입한 책을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근대는 우리의 근대와 밀접하다. 생활 속에 스며 있는 일본의 근대 풍경은 우리의 근대 풍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 5종이 출간됐다. 소 대표는 구입한 책들을 더 번역해 30권짜리 시리즈로 완간할 생각이다.

10월 중순이 되면 ‘호텔과 일본 근대’가 출간된다. 소 대표는 “이 소식을 전해들은 한 기업 총수가 이 책을 1000부 구입해 직원들에게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반가운 일이다. 우리 필자가 쓴 자장면 책도 나올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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