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신데렐라’ 데릴사위들의 꿈과 절망

  • 입력 2007년 8월 7일 16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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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릴사위를 고르는데 정작 결혼 당사자인 딸의 목소리는 없을 때가 많다고 한다.
데릴사위를 고르는데 정작 결혼 당사자인 딸의 목소리는 없을 때가 많다고 한다.
졸부들이 원하는 데릴사위의 첫째 조건은 전문직이다. 현직 의사와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의사나 변호사가 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뿐 아니라 개업까지 보장한다.
졸부들이 원하는 데릴사위의 첫째 조건은 전문직이다. 현직 의사와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의사나 변호사가 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뿐 아니라 개업까지 보장한다.
지난 6월 ‘남자 신데렐라를 뽑는다’는 공모가 있어 화제가 됐다. 결혼정보업체 (주)좋은만남 선우가 홈페이지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1000억원대 재산가의 외동딸은 38세로 키는 조금 작지만(158cm) 얼굴은 ‘A급’이라고 한다.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현재 대학 강단에 서고 있는데, 본인의 재산만 2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배우자의 조건은 집안에 아들이 없는 만큼 아들 노릇을 하면서 집안을 이끌어갈 ‘데릴사위’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더 눈길을 끈 것은 데릴사위 공개모집 공고가 나간 후 “내 데릴사위도 찾아달라”는, 딸만 가진 부모들의 주문이 쇄도했다는 것. 선우에 따르면 보름 사이에 100여 명이 신청을 했는데, 상당수가 적게는 50억원, 많게는 1000억원대 재산을 가진 재력가라고 했다.

선우 이웅진 대표는 “과거에도 데릴사위에 대한 수요가 있기는 했지만 드러내지 않고 쉬쉬하는 분위기가 강했다”며 “그동안 숨어 있던 욕구가 1000억원대 갑부의 데릴사위 공개모집을 계기로 수면으로 올라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혼전문업체 비에나래의 손동규 대표도 “넓은 의미의 데릴사위를 골라달라는 요청이 최근 2~3년 사이에 많이 늘었다. 요즘은 한 달에 10건 정도에 달한다”고 했다. 이곳에 가입하는 여성 회원이 한 달 평균 200명 정도라고 하니 전체의 5%인 셈이다.

실제로 처가에 들어가 살거나 처가 근처에 살면서 이런저런 도움을 받는 가정이 급격히 늘었다. 통계청의 2006년 사회통계조사를 보면 전체 10가구 중 4가구가 부모를 모시고 사는데, 이 중 장남과의 동거는 2002년 24.6%에서 4년 만에 21.8%로 하락했다. 반면 딸과 사위가 모시고 사는 비율은 3.6%에서 5.7%로 늘어났다.

젊은 층에서는 데릴사위에 대해 그다지 꺼리지 않는 분위기다. 결혼정보업체 웨디안이 전문직 남성 200명을 대상으로 ‘데릴사위 제안을 받아들이겠느냐’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 54%가 ‘재력이 뛰어나도 데릴사위는 관심 없다’고 응답했다. 반면 ‘재력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결정하겠다’(32%)와 ‘데릴사위라도 상관없다’(14%)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데릴사위는 ‘머슴’ ‘씨내리’용 種馬?

그러나 데릴사위가 다 행복한 것은 아니다. 잘 살고 있는 대부분의 데릴사위는 소문이 나지 않는 반면, 파경에 이른 경우는 소문이 나게 마련이어서인지 실패 사례를 더 쉽게 접할 수 있다.

40대 초반인 A씨는 13년 전, 은행 동료 직원의 소개로 결혼했다. 처가는 사채업으로 어느 정도의 현금과 부동산을 가진 집안이었다. 장모는 그에게 은행을 그만두고 자신의 재산을 관리해줄 것을 요구했고, 그는 처가에 들어가 살면서 열심히 일을 도왔다. 그의 노력 덕분에 처가 재산은 크게 불어나 지금은 1000억원에 가깝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장모에게 그는 머슴, 기껏해야 부하직원일 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괄괄하고 직설적인 장모는 잔소리도 심했고 인간적인 모욕을 주기도 했다. 심지어 사위에게 무릎 꿇고 잘못을 빌게 한 적도 많았다. 그렇다고 아내가 그를 위로하는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아내는 시댁의 ‘시’자가 들어간 것은 다 싫어했다. 시부모 생일에조차 직원 손에 꽃과 돈봉투를 들려 보내곤 친정식구나 친구들과 외출하는 게 다반사였다. 형제들 보기도 민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와의 다툼이 잦아지고, 처가식구와의 갈등도 깊어졌다. 결국 그는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싶다며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방법을 물어왔다.

김충식(36)씨도 현재 이혼 수속을 밟고 있는 데릴사위다. 모 대기업에 근무하던 그는 동료 연구원이던 아내와 2000년 결혼했다. 장인이 공기업 사장 출신으로 어느 정도 재력도 있는 집안이었다. 결혼을 결심하고 처가를 찾았을 때 장인은 조심스럽게 종손(宗孫)인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며 처가로 호적을 옮길 것을 부탁했다. 본가에서 강하게 반대했지만 그는 입부혼을 강행했다.

장인은 처갓집 바로 옆에 아파트를 얻어주고 조건이 더 좋은 회사로 옮겨줬다. 달콤한 신혼생활이 이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환상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처가는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본가를 무시하는 것은 물론, 자신도 무시했다. 그는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꼈다. 특히 아이를 본가에 데려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생각해보니 자기 이름으로 된 재산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명의로 된 신용카드도 마음대로 만들지 못하게 했다.

이런 불만을 장인에게 털어놓자 장인은 “내가 자네 집안이나 자네의 비전을 보고 내 딸을 준 건 아니다. 건강하고 건장한 자네의 몸이 좋았을 뿐”이라고 했다. 순간 그는 자신이 처가에서 씨를 얻기 위해 사육되는 종마(種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집안을 이을 후손을 얻기 위한 정략적 결혼이었음을 깨달은 그는 이혼을 결심하고, 현재 아들을 되찾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데릴사위 “돈으로 사람 통제” VS “선택의 문제일 뿐”

재산가들이 돈을 앞세워 데릴사위를 얻으려 하는 것에 대해 ‘돈으로 사람을 사겠다는 것’이라는 세간의 비난이 높기는 하다. 중앙대 주은우 교수(사회학)는 “조건을 맞춘다는 명목으로 돈 많은 처가가 남성을 컨트롤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차라리 입양을 하는 것이 솔직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강학중 한국가정경영연구소장도 “데릴사위제는 능력 있는 딸을 키워 가계를 번창시키는 게 아니라 남자인 사위에게 이를 맡기겠다는 것이다. 결국 남자가 집안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가부장적 사고나 다름없다”며 데릴사위의 긍정, 부정을 따지기에 앞서 능력 있는 딸에게 가업을 물려주겠다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설령 재력을 보고 신청자가 몰렸다고 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는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고려대 현택수 교수(사회학과)는 “사랑은 인품, 학력, 재산 등이 어우러져 다가오는 총체적인 느낌인데, 우리 사회는 돈이 개입되면 무조건 순수하지 않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며 데릴사위에 대해 “재력가가 돈이라는 자신의 강점을 활용해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사람을 선택하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동아닷컴>

**이 기사는 시판중인 신동아 8월호를 요약한 것입니다. 전문은 신동아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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