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탑, 고려초 지진으로 두 차례 붕괴

  • 입력 2007년 8월 7일 15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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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석가탑이 1020~1030년대에 경주 일대를 강타한 지진으로 두 차례나 붕괴되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고려 초 석가탑을 중수하면서 탑신 2층 사리공에 사리구 일체와 함께 안치한 서류뭉치인 묵서지편을 중간 판독한 결과 밝혀졌다.

나아가 묵서지편에서는 1024년(고려 현종 15년) 제1차 중수 때 그 전말을 기록한 중수기와 중수형지기, 그리고 1038년(고려 정종 4년) 제2차 중수에 즈음해 작성한 중수형지기가 별도로 봉안된 사실도 드러났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홍남)이 주도하는 묵서지편 문서 판독 작업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7일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면서 "그동안 간헐적으로 공개된 묵서지편 문서로는 알 수 없던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그 중 하나로 창건 280여 년 만에 석가탑을 중수하게 된 원인으로 묵서지편이 '지동' 즉, 지진을 거론한 대목을 들었다.

중수기 관련 문건에서는 또 지진으로 인해 석가탑뿐만 아니라 불국사 경내 '계단' 혹은 '다리'도 붕괴되었다는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계단이나 다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확실치 않으나 청운교나 백운교 등을 지칭할 공산이 큰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이렇게 됨으로써 기존에 단편적으로 공개된 묵서지편 자료에서 가장 큰 의문점으로 남은 대목 즉, 석가탑을 왜 중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지진이라는 답변으로 풀리게 됐다.

나아가 1024년에 중수한 석가탑을 불과 14년 뒤인 1038년에 다시 해체하고 2차 중수를 하게 된 원인도 역시 지진에 있었음을 알게 됐다.

뿐만 아니라 국립중앙박물관이 1024년 1차 중수기라고 공개한 문건 안에 현종(1010-1031)이라는 고려왕 시호(죽은 뒤에 올린 이름)가 들어가게 된 것도 이 것이 1차 중수기가 아니라 현종이 죽은 지 7년이나 지난 1038년에 작성된 2차 중수형지기 문건의 일부였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으로 밝혀졌다.

이밖에도 이 중수기류 문서에는 석가탑이 신라 혜공왕대에 완성됐다는 구체적인 기록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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