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같은 문체…연암은 조선의 셰익스피어

  • 입력 2007년 7월 23일 19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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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은 조선의 셰익스피어입니다."

2002년부터 연암 박지원의 한문산문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그 아름다움을 함께 알리는 작업에 주력하는 박희병(51·국문학) 서울대 교수의 지론이다.

어떤 이는 이 말에 무릎을 치겠지만 어떤 이는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교과서에 실린 '열하일기'나 '허생전'을 통해 연암의 글을 조금씩은 읽어봤다. 그러나 그 글을 읽으면서 미학적 희열을 맛 본 이는 드물다. 과연 연암을 셰익스피어에 비견할 수 있을까 .

"학사논문으로 연암의 글을 접하면서 비로소 그 비범함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한학의 대가인 우전 신호열('연압집'의 공동역자) 선생 밑에서 연암의 글을 배웠지만 너무 어려워 묘미를 깨치기 힘들었습니다. 연암의 글은 한자의 미묘한 의미를 고도로 압축해 사용하기 때문에 한학 전공자에게도 난해하기 그지없습니다."

박 교수는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2002년부터 5년째 10여명의 제자와 함께 연암의 글을 한땀 한땀 단아한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해왔다.

"상을 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매주 수요일 저녁에 모여 연암 강독회를 해왔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명절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첫 성과물이 지난해 박 교수의 이름으로 출간된 '연암을 읽는다'였다. 이 책은 연암의 산문 소품 중에서 22편을 골라내 한문원문과 그에 대한 섬세한 한글번역과 꼼꼼한 주역, 그리고 저자의 풍부한 비평을 곁들인 독특한 책이었다.

누님의 상여를 실은 배가 떠나는 새벽 산과 강물, 초승달의 풍광에서 누님이 시집가던 날 쪽진 머리, 거울, 눈썹을 포착하는 심물합일(心物合一)의 상상력. 대나무에 미친 양호맹(梁浩孟)이란 사내의 풍모에서 거꾸로 대나무의 형상을 읽어내는 역발상. '사기'를 쓸 때 사마천의 심정을 간발의 차로 나비를 놓친 동심으로 형상화한 절묘한 묘사력….

이 책은 연암 문학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암의 글을 그대로 영역하면 그 미묘한 아름다움을 전할 수 없기에 '연암을 읽는다'를 통째로 번역해야한다는 평을 들을 정도였다.

그 박 교수가 이번엔 '연암을 읽다'에 실린 산문 22편의 번역문과 이를 대조할 수 있도록 기존 번역문 일체 그리고 조선시대 문인들의 비평문까지 집대성한 '연암산문정독'을 펴냈다. 이번엔 개인적 비평을 빼고 6명 후학들과 공동명의로 냈다. 왜 비슷한 책 2권을 별도로 출간한 것일까.

"연암의 글에는 대중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사유의 심오함과 예술적 심미가 담겼습니다. 이걸 쉽게 풀어내기 위해선 탄탄한 학문적 엄밀성을 함께 갖춰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대중적인 '연암을 읽다'와 학술적인 '연암산문정독'을 나란히 펴낼 계획을 세웠습니다."

박 교수는 소설을 포함해 100여 편의 연암산문의 정수를 대중판과 학술판으로 나눠 2010년까지 각각 5권으로 출간하겠다고 밝혔다.

"연암의 글을 대중화하려는 것은 그를 통해 오늘날 삭막해진 우리 심성을 아름답게 가꾸고 싶기 때문입니다. 연암의 글에는 현대인이 상실한 자연친화적 감수성이 있고 현대인의 단순한 사고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사유의 힘이 담겼습니다."

박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극구 사양해왔다. 학자가 명성을 탐해선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자들과 함께 한 연구의 성과를 알려야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에 밀려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을 찾아온 기자를 맞이했고 끈질긴 설득 끝에 사진 촬영도 허락했다. 깡마르면서도 꼿꼿한 그의 풍모를 카메라에 담으며 대나무에 대한 글은 결코 쓰지 않겠다던 연암이 대나무를 닮은 그 풍모에 반해 글을 지어준 양호맹이 떠올랐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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