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 가족 20여명 통영 앞바다서 무사귀환 제사

  • 입력 2007년 7월 23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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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경남 통영시에 처음으로 모여 납북된 가족들을 위한 제사를 지낸 납북자 가족들이 납북자 귀환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통영=한상준 기자
22일 경남 통영시에 처음으로 모여 납북된 가족들을 위한 제사를 지낸 납북자 가족들이 납북자 귀환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통영=한상준 기자
22일 경남 통영시 앞바다.

조그만 고깃배에 올라탄 사람들은 뱃머리를 북쪽으로 향한 채 흑백 사진 몇 장을 앞에 두고 제사상을 차렸다. “제발 죽었는지 살았는지만이라도….”

이간심(72·여) 씨의 절규에 절을 하던 사람들은 다 함께 오열했다.

북쪽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 이 들은 아버지, 남편, 아들이 북한에 있는 납북자 가족들이었다.

1971년 아들이 납북된 이 씨는 “따뜻한 밥 한 끼라도 해 먹이고 싶은 마음밖에 없다”며 흐느꼈다. 이 씨의 아들 정완상 씨는 열아홉 살에 납북됐다.

이 씨 등 20여 명의 납북자 가족들은 이날 1973년 납북된 김병도(53) 씨의 생일을 맞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가족들의 귀환을 비는 제사를 지냈다.

김 씨의 본래 생일은 10월. 그러나 김 씨는 북한 땅에서 탈출해 30년 만에 고향 통영 땅을 다시 밟은 2003년 7월 23일을 두 번째 생일로 여기고 있다.


촬영: 한상준 기자

김 씨의 어머니 이주순(84) 씨는 “생사 여부도 몰랐던 아들이 살아 돌아왔으니 올해 23일은 아들의 네 번째 생일인 셈”이라고 말했다.

제사를 올리기 전날인 21일 납북자 가족들은 통영시의 한 음식점에 모였다. 김 씨의 한국 귀환 4주년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참석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김 씨는 다행히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납북자가 486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날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이 아직 북한에 있다.

옥철순(75) 씨는 “아들을 다시 만난 이주순 씨가 정말 부럽다”며 한숨을 쉬었다.

옥 씨의 남편 박두남 씨는 1972년 납북됐다. 최근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박 씨가 사망했다는 통보를 받은 옥 씨에게 남은 마지막 소원은 남편의 유골이라도 가지고 오는 것.

침울한 얼굴로 연방 소주잔을 비우던 가족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정부에 대한 원망을 쏟아냈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발언이 화제로 오르자 납북자 가족들의 울분은 극에 달했다.

이 장관은 8일 외신기자클럽에서 “납치자 중에 본인 의지로 간 경우도 있고 여러 정치적 목적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5월 정부가 1967년 납북된 최원모 씨에 대해 ‘최 씨는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치됐으며 강제 억류됐다’고 밝힌 사실을 언급하며 “정부가 납북 사실을 확인해 주는 상황에서 이 장관은 오히려 납북자 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가족들의 성토가 이어지는 가운데 1961년 납북됐다가 2001년 귀환한 진정팔(67) 씨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믿어 봅시다. …나처럼 꼭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

진 씨의 한마디에 가족들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고 결국 생일잔치는 눈물로 마무리됐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나만 이렇게 돌아와 정말 미안합니다.”

잔치가 끝난 뒤 이날의 주인공인 김 씨가 통영 앞바다를 보며 누군가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통영=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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