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천마디를 이긴 한마디’

  • 입력 2007년 7월 1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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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마디를 이긴 한마디/헬게 헤세 지음·박종대 옮김/448쪽·1만5000원·북스코프

한마디 ‘명언’이 세상을 바꾼다

“너 자신을 알라.”

숱하게 썼을, 한번쯤은 책상 가에 붙였을 이 명언. 그 밑에는 당연히 ‘소크라테스’라고 썼음직하다.

그러나 저자는 첫 장부터 상식을 깬다. 델포이 신전에 이 문구를 새긴 이는 스파르타 정치인 킬론이었다. 사실 그것도 의심스럽다. 인간을 중심에 뒀던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야말로 명언의 진짜 주인공일 것이라고 추론한다.

말은 강하다. 위대한 한마디는 개인의 삶을, 세계를 뒤흔든다. 그리고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돌고 돈다. 저자는 그 명언의 정체에 칼을 댄다. 그 말은 어디서 나왔으며, 어디서 왜곡됐는지. 하나하나 들춰낸다.

피라미드 아래에 선 나폴레옹. “4000년이 그대들을 내려다본다”며 병사를 격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문헌상으로는 그로부터 몇 년 뒤 유배 시절 기록에서 그 말이 발견된다. 동독의 느린 개혁 정책에 “너무 늦게 온 사람은 인생으로부터 벌을 받는다”며 질책을 가한 고르바초프. 독일에 도착할 당시 찍은 필름엔 “인생에 반응치 않는 사람에겐 위험이 기다린다”는 다소 엉뚱한 말을 했다. 언론을 겨냥한 측근의 각색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명언을 둘러싼 ‘상식’을 깨는 데만 주력하지 않는다. 그 한마디가 왜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됐는지를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배경과 함께 추적했다. 결국 말은 시대상을 반영할 때 울림이 커지고 세상으로 퍼져 나간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당신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먼저 물어라.”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하면 떠오르는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케네디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명언으로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를 꼽는다. 당시 동서로 갈라진 베를린은 냉전의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는 도시였다. 베를린을 방문해 현지 시민을 자처한 것은 미국 대통령으로 자유진영의 대표가 되겠다는 시대적 외침이었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이 책에 실린 명언은 70개. 고대 그리스로부터 최근 ‘악의 축’까지 시대를 망라했다. 독일인 저자가 서구의 명언에만 지면을 할애한 게 아쉽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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