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이 일어나도, 전쟁이 터져도, 동족살상을 보아도, 천문학적인 부정축재가 밝혀져도, 존속살인을 보아도, 한강다리가 무너져도, 백화점이 주저앉아도, 패륜적인 사생활을 보아도, 분신자살을 보아도, 심지어 예술이라고 포장한 거짓말 덩어리를 보아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이제 볼 만큼 다 봤다는 얘기고 인간의 악행이 무한대로 진행되는 꼴을 지겹도록 목격했다는 이야기도 된다. ‘진실 따위는 없다’는 얘기도 된다.
이 꼴 저 꼴 다 보았으니 무감각밖에 남은 게 없는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편한 구석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어떤 아쉬움이 늘 목마름처럼 따라다닌다. 그래도 남은 생에 뭔가 좀 그럴싸한 것을 보고 겪고 싶은 마음,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그 무엇이 마음을 간질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 관심은 오직 나와 주변에만 국한돼 있었다. 특히 나 자신에게 집중돼 있었던 것 같다. 희망이란 모두 나와 가족에 관한 것들이었다. 성공을 했으면, 집을 샀으면, 돈을 벌었으면….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나보다는 남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내 개인에 관한 관심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먹고사는 기본 적인 일이었다. 나는 그저 그런 수십억 인구 중의 한 명일 뿐이었고, 나의 관심이란 게 그저 모래알만 한 그런 크기였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오로지 나’에서 벗어나 좀 더 산 것처럼 살다 가고 싶다. 그래야 저세상에 가서도 아름다운 것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우리는 크고 대단한 것, 충격적인 것, 강렬한 것, 잘난 것, 세계 최대의 것, 그리고 악하고 부정적인 것들에 지쳤다. 사실, 우리의 굳은 감각을 깨울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라 작고 아름다운 것들이다. 가슴을 울리는 따뜻한 미담 하나, 타인과 나누는 정다운 이야기, 풀꽃 한 송이 같은 것들 말이다.
소설가 이청해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