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토종 재즈클럽 야누스 29년 만에 문닫는다

  • 입력 2007년 6월 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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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재즈클럽 ‘야누스’에서 주인인 재즈가수 박성연 씨가 텅 빈 객석을 향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변영욱 기자
5일 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재즈클럽 ‘야누스’에서 주인인 재즈가수 박성연 씨가 텅 빈 객석을 향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변영욱 기자
《20개 남짓한 테이블 위엔 촛불만 춤추고 있었다. 5일 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재즈클럽 ‘야누스’를 채운 그 한기는 무엇일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대여섯 명의 손님도, 콘트라베이스, 색소폰, 피아노, 드럼 등 무대 위 4인조 밴드의 연주도 왠지 썰렁한 분위기를 덥히진 못했다. 108평의 넓은 공간을 휘젓고 다니는 바람만이 ‘재즈’처럼 자유로울 뿐.》

매일 오후 9시 이곳에서 마이크를 잡는 가게 주인이자 국내 재즈계의 ‘대모’ 박성연(52) 씨는 이날도 무대에 올라 스탠더드 재즈곡을 불렀다. 어느덧 29년째 노래해 온 그녀, 그러나 이젠 하루하루 무대가 낯설단다. 언제 무대에서 내려올지 모르는 불안감, 바로 토종 재즈클럽 중 가장 오래된 이곳이 거듭된 적자로 곧 문을 닫기 때문이다.

“3년간 금전적으로 도와주신 분이 ‘더는 돕기 힘들다’고 하셨고 이후 재정이 악화돼 결국 가게를 처분하기로 결심했죠. 얼마 전에 가게를 인수하겠다는 분이 나타났는데 다른 업종으로 변경한다고 하더라고요.”

1978년 신촌에서 문을 연 ‘야누스’는 이화여대 앞, 대학로를 거쳐 1997년 지금의 청담동으로 옮겨졌다. 1976년 문을 연 이태원의 ‘올 댓 재즈’가 중국계 미국인이 만든 ‘서양식’ 재즈클럽이라면 ‘야누스’는 박 씨가 세운 최초의 국내 재즈클럽이란 점에서 의미가 깊다.

드러머 최세진, 피아니스트 신관웅 등 재즈 1세대는 물론이고 색소포니스트 이정식, 재즈가수 말로 등 이곳 무대에 오르지 않은 재즈 뮤지션이 없을 정도로 ‘야누스’의 역사는 바로 한국 재즈의 역사다.


▲ 동영상 촬영 : 김범석 기자

야누스가 재정 문제로 고통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에도 ‘야누스’ 동호회 회원들과 재즈 마니아 등 100여 명이 클럽을 살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고 2003년에는 기업가에게서 6억 원 상당의 스피커와 음향기기, 매달 몇백만 원의 월세까지 제공받았다. 그러나 갈수록 손님은 뜸해지는 상황에 이 같은 지원도 지난해 말 끊겼다.

현재 전국 재즈클럽은 100여 개. 상당수는 재즈 공연보다 실내 인테리어에 더 치중하며 젊은 손님들을 끌어 모으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 재즈평론가 남무성 씨는 “‘블루 노트’나 ‘버드랜드’ 등 외국의 유명 재즈클럽의 경우 ‘필립모리스’ 같은 담배회사는 물론 맥주회사 ‘기린’,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등 기업에서 클럽 공연을 후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내년이 30주년인데…”라는 기자의 말에 박 씨는 “난 가수일 뿐이지 장사할 사람은 못 되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유, 그래도 가게 철거하기 전 여기 있는 음악 자료들은 다 가지고 갈 거예요. ‘야누스’는 ‘시작의 신’이란 뜻이니까 언제 어디선가 다시 역사는 시작될 거라 믿어요.”

그러곤 손님들 속으로 사라졌다. “노래 잘 들었어요, 사장님”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보며 싱긋 웃는 그녀, 휑한 바람을 헤치고 무대에 올라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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