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오후 9시 이곳에서 마이크를 잡는 가게 주인이자 국내 재즈계의 ‘대모’ 박성연(52) 씨는 이날도 무대에 올라 스탠더드 재즈곡을 불렀다. 어느덧 29년째 노래해 온 그녀, 그러나 이젠 하루하루 무대가 낯설단다. 언제 무대에서 내려올지 모르는 불안감, 바로 토종 재즈클럽 중 가장 오래된 이곳이 거듭된 적자로 곧 문을 닫기 때문이다.
“3년간 금전적으로 도와주신 분이 ‘더는 돕기 힘들다’고 하셨고 이후 재정이 악화돼 결국 가게를 처분하기로 결심했죠. 얼마 전에 가게를 인수하겠다는 분이 나타났는데 다른 업종으로 변경한다고 하더라고요.”
1978년 신촌에서 문을 연 ‘야누스’는 이화여대 앞, 대학로를 거쳐 1997년 지금의 청담동으로 옮겨졌다. 1976년 문을 연 이태원의 ‘올 댓 재즈’가 중국계 미국인이 만든 ‘서양식’ 재즈클럽이라면 ‘야누스’는 박 씨가 세운 최초의 국내 재즈클럽이란 점에서 의미가 깊다.
드러머 최세진, 피아니스트 신관웅 등 재즈 1세대는 물론이고 색소포니스트 이정식, 재즈가수 말로 등 이곳 무대에 오르지 않은 재즈 뮤지션이 없을 정도로 ‘야누스’의 역사는 바로 한국 재즈의 역사다.
현재 전국 재즈클럽은 100여 개. 상당수는 재즈 공연보다 실내 인테리어에 더 치중하며 젊은 손님들을 끌어 모으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 재즈평론가 남무성 씨는 “‘블루 노트’나 ‘버드랜드’ 등 외국의 유명 재즈클럽의 경우 ‘필립모리스’ 같은 담배회사는 물론 맥주회사 ‘기린’,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등 기업에서 클럽 공연을 후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내년이 30주년인데…”라는 기자의 말에 박 씨는 “난 가수일 뿐이지 장사할 사람은 못 되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유, 그래도 가게 철거하기 전 여기 있는 음악 자료들은 다 가지고 갈 거예요. ‘야누스’는 ‘시작의 신’이란 뜻이니까 언제 어디선가 다시 역사는 시작될 거라 믿어요.”
그러곤 손님들 속으로 사라졌다. “노래 잘 들었어요, 사장님”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보며 싱긋 웃는 그녀, 휑한 바람을 헤치고 무대에 올라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dongA.com에 동영상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