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아버지다]<중>아버지가 간다!

  • 입력 2007년 6월 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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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부재의 시대라는 이 시대에 가정에서 아빠의 자리 찾기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할까. 요리나 육아를 돕는 방법을 우선 권할 수 있지만 바쁜 아버지들에게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아버지만이 할 수 있고 또 잘할 수 있는 그 어떤 역할을 찾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서울 성동구 옥수동에 사는 주부 강모(53) 씨는 몇 달 전 아들 직장 문제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아들의 이력이 꽤 좋은 편이었는데도 원하는 직장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기 때문. 풀죽은 아들에게 달리 해 줄 게 없었던 강 씨는 “그 회사가 인재도 못 알아보는 모양”이라며 감정적인 대응으로 아들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좀 달랐다. 남편은 아들에게 “이력이 너무 좋아도 안 될 때가 있다. 너무 실망할 필요 없다. 너 정도의 조건을 부담스러워하는 회사라면 입사하더라도 성장할 기회 또한 주지 못할 거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기다려 보자”며 논리적으로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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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얼마 후 다른 회사에 취직했고 직장생활에서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아버지한테 조언을 구한다. 남편에게 집안일에 무관심하다고 늘 핀잔만 주던 강 씨도 요즘은 남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것 같아 든든하기만 하다.

20여 년 동안 몸소 실천한 자녀교육 노하우를 두 권의 책으로 펴낸 단국대 이해명(특수교육학) 교수는 가정에서 아버지의 자리를 찾는 방법으로 ‘사회적 자본’을 활용할 것을 권한다.

예컨대 아버지의 사회적 경험, 지식, 네트워크, 노하우 등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는 것이다. 아버지야말로 아이들에게 사회에서 수십 년 쌓아 온 세상살이의 지혜를 전수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게 이 교수 이야기.

그는 “요즘은 바깥일을 하는 엄마들도 많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고려할 때 여전히 사회생활에 적극적인 사람은 아버지”라며 “사회적 관계가 많은 아버지들이야말로 처세나 대인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아이들 일상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은 아버지들에게 자녀들과의 ‘대화’는 좀처럼 풀기 힘든 숙제다. 이때 아버지들이 직장 내 고민거리를 대화의 소재로 삼는 것도 사회적 자본을 활용하는 좋은 실천방법 중 하나라고 이 교수는 조언한다.

이 교수는 “한번은 식탁에서 아이들에게 골치 아픈 문제를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당시 중학생이던 아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며 나름대로 해결 아이디어까지 내놓았다”며 “고민을 털어놓는 순간 나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고 아이는 아빠의 의외의 모습에 더 친근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아빠의 직장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사에 대한 이해, 사회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이 아이에게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음은 물론”이라며 “단, 대화를 풀어 나갈 때 교과서적이고 설교조로 흐르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버지가 가정에서 자리 찾기를 하는 데는 무엇보다 엄마의 협조가 필수다.

초등학생 남매를 둔 회사원 이모(40·서울 양천구 목동) 씨는 석 달째 남매에게 주말마다 한자공부를 시키고 있다. 가족의 아웃사이더였던 남편이 아이들에게 ‘선생님 아빠’로 돌아올 수 있었던 데는 아내 정혜영(40) 씨의 역할이 컸다.

정 씨는 “토요일에는 남편도 좀 여유가 있는 것 같아 ‘당신이 잘하는 과목’ 하나만 택해서 아이들 공부를 좀 봐주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며 “꺼리는 아이들에게 ‘이것은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분위기를 유도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빠들이 가족의 일에 지속적으로 관여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 주는 데서 아빠의 자리 찾기는 시작되는 것 같다”고 했다.

박완정 사외기자 tyra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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