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성석제의 그림 읽기]원칙주의자

  • 입력 2007년 6월 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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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스스로가 만든 원칙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직장과 집 사이를 오갈 때 승용차를 주로 이용합니다.

그의 집은 신도시에 있고 직장은 지방공단에 있어서 두 곳은 고속도로로―도로법상 표기 원칙으로는 ‘고속국도’입니다만 저는 제 친구 같은 원칙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편하게 말하죠, 뭐―연결됩니다. 물론 고속도로보다 일반 국도가 먼저 생겼지요. 고속도로가 없었을 당시에 그는 국도로 출퇴근했고 지금도 국도로 출퇴근합니다.

그의 집에서 고속도로로 올라가는 건 아주 쉽습니다. 직장 역시 고속도로에서 나가자마자 곧바로 닿는 위치에 있지요. 국도는 중간에 시내를 통과하는 구간이 있어서 신호가 많습니다. 그의 집에서 국도로 가는 중간에 공사구간도, 좁은 도로도 있지요. 아무리 봐도 고속도로로 다니는 게 편해 보이고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국도에서 밀리거나 신호에 걸려서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을 생각하면 통행료는 아까운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는 출퇴근할 때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습니다. 그게 그의 원칙입니다. 왜냐고요?

“그 구간에서는 고속보다는 저속으로 운행할 때가 많아. 그건 말이 안 되잖아? 고속도로에서 정체될 때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 생각 중에 가장 하기 싫은 생각이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상황에 관한 거야. 고속도로에서 차가 저속으로 가고 있다, 고속도로는 주차장이 아닌데 차가 서 있다. 그게 화가 나거든. 돈이나 시간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내가 납득할 수 없는 비논리적인 일을 하고 있으면서 화를 내는 내가 또 바보 같아서 화가 나. 그래서 고속도로로 안 가는 거지.”

물론 그는 출퇴근 이외의 경우에는 고속도로를 이용합니다. 다만 원칙을 지키는 것뿐이죠. 누군가는 원칙을 지키고 있고 원칙이 존중되는 사회를 지탱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사회의 항상성이 지켜지는 게 아닐까요? 하여튼 저는 제 친구를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그런데 하고많은 기념일 중 ‘친구의 날’은 왜 없는 걸까요? ‘원칙의 날’은?

작가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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