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21세기의 병폐, 그 판도라 상자는 18세기에 열렸다

  • 입력 2007년 6월 2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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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백년 18세기/한국18세기학회 엮음/389쪽·1만6000원·태학사

《‘모든 가능한 세계들 중 최상의 세계.’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치히가 18세기를 두고 한 말이다. 세계사에서 18세기가 차지하는 위치는 특별하다. 유럽은 계몽주의와 자연과학의 발달로 새로운 시대를 건설했으며 동양은 청 조선 일본 간의 전쟁이 마무리되며 평화의 번영기를 맞이했던 시기다. 그러면서도 18세기의 결과는 상반됐다. 한쪽은 과학 기술의 성취와 함께 식민지를 건설하고 부를 축적한 반면 다른 한쪽은 그 희생자가 되어야 했다.

이 책은 동서양의 황금기라는 18세기를 집중 연구해온 한국18세기학회 소속 학자 12인의 공동 저작이다. 한국 및 동서양사를 전공한 중견학자 12인이 2년에 걸쳐 18세기에 대해 벌인 생생한 토론 현장을 책으로 묶어낸 것이다. 역사, 철학, 문학 등의 주요 움직임을 분석하며 이들은 묻고 답한다. 18세기 동아시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서양은 어디로 가고 있었는가? 18세기 동서양의 차이점은 무엇이었는가?》

○ 근대 시민, 합리적 이성, 구(舊)사상의 쇠락

18세기에 두드러진 것은 시민세력의 성장,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 구 사상의 쇠락이었다.

유럽에서는 데카르트, 라이프치히 등이 등장하면서 합리적 이성을 강조했고 이성에 주목한 계몽주의는 절대왕권을 무너뜨리는 시민혁명을 가져왔다. 종교로부터 분리된 과학은 제약 없이 발전을 거듭했다.

동아시아의 사정도 비슷했다. 마테오 리치 등 가톨릭 선교사들로부터 서양 사상을 흡수한 진보적 지식인들이 등장했으며 고증학, 실학, 난학 등 새로운 사상이 나타났다. 서양의 과학 기술도 일부 지식인들에 의해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웠다. 유럽은 상공업의 발전을 통해 산업혁명을 목전에 두고 있었으며 오랜만에 평화기를 맞이한 동아시아는 급격한 인구 증가를 경험했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시민들의 공론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카페와 클럽 등이 발달했고 동양에서는 민심을 살피는 왕의 지방 순행이 잦아졌다.

○ 18세기의 변질

18세기가 긍정적인 모습만 갖춘 것은 아니었다. 지금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의 근원지 또한 18세기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서양은 18세기에 과학 기술의 선진화를 통해 다른 세계에 대한 침략을 본격화했다. 이성과 과학에 대한 맹목적 신앙은 인간성 말살, 백인우월주의, 제국주의로 이어졌다. 이러한 사회 현상을 비판해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가 등장하기도 했다.

동양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청나라는 한때 중화(中華)에 대해 ‘한족뿐 아니라 문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존재’라며 폭넓은 포용의 자세를 보였으나 나중에는 이를 통해 주변 민족 침략을 합리화하는 데 이용했다. 또 ‘사고전서’ 제작을 통한 사상의 일원화를 꾀하는 등 소수 지배 세력인 만주족과 정권 안정에만 골몰했다. 조선 역시 서양에서 들어온 서학을 성리학적 질서를 재정립하는 도구로 재활용했고 이에 대한 진지한 과학적 접근은 소수의 목소리로 묻혀버렸다.

그렇다면 왜 지금 18세기를 바라봐야 하는가. 인간 중심, 백인 우월, 자연 경시 등이 불러온 현대 사회의 병폐가 시작된 시점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18세기 정신의 왜곡으로 벌어진 이 같은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18세기의 원형을 주목했다. 그 원형이란 인간에 대한 신뢰, 합리적 이성, 구체제에 대한 회의 등이다. 사회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변혁하려 했던 18세기의 근본정신을 통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더욱 각별하다. 황금의 18세기를 보내고 불과 100년 뒤 조선이 서구와 다른 결과를 맞이했던 것은 바꿀 수 없는 절대적 기준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치관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맹신, 이분법적 편 가르기, 포용성의 부족은 18세기 조선이 극복하지 못했던 문제들이었고 결국 조선과 서구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과연 21세기의 우리는 이로부터 자유로운 것일까.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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