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일흔’ 두 여성의 ‘장수시대를 사는 법’ 편지대화

  • 입력 2007년 5월 1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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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노인복지 현장에서 강사로 활동하는 유경 씨(왼쪽)와 예순넷에 첫 책을 쓰며 노년 상담가로 살고 있는 고광애 씨. 사진 제공 서해문집
20여 년간 노인복지 현장에서 강사로 활동하는 유경 씨(왼쪽)와 예순넷에 첫 책을 쓰며 노년 상담가로 살고 있는 고광애 씨. 사진 제공 서해문집
동아일보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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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늙는 것이 잘 늙는 것일까.

인생 후반전이 길어지면서 노년의 삶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20여 년 동안 노인복지 현장에서 강사로 활동 중인 중년의 유경(47) 씨와 예순넷의 나이에 ‘아름다운 노년을 위하여’를 펴낸 노년 상담가 고광애(70) 씨가 ‘마흔과 일흔이 함께 쓰는 인생노트’(서해문집)를 펴냈다.

중년과 노년을 대표하는 두 사람의 글에서는 너무 빨리 닥친 장수 시대를 맞는 당혹감과 함께 ‘늙음’도 결국 대비하고 알아야 한다는 지혜를 준다. 특히 고 씨의 글에서는 상식을 뒤엎는 노년의 삶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어 흥미롭다. 두 사람의 대화를 편지 형식으로 발췌해 싣는다.》

▼마흔이 일흔에게▼

몸과 마음 모두 옛날 같은 생생함에서 멀어졌다는 생각입니다. 입이 원하는 대로 먹고 생활리듬이 깨질 만큼 늦게까지 노는 일에도 이제 작별을 고할 때인 것 같습니다.

저희 같은 중년은 위로는 부모님을 섬기고 아래로는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전형적인 낀 세대입니다.

지금의 노년 세대가 아무 준비 없이 노년을 맞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보면서 본격적인 노후 대비에 관심을 가진 세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아이 키우기나 부모 부양이 쉽지 않습니다.

늙으면 몇 억 원씩 필요하다 하니 대다수 중년은 가슴이 답답하고 그런 돈도 없는 스스로를 한심스러워합니다. 돈 때문에 서로 등지고 사는 부모 자식도 많습니다. 처음 맞는 장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라 이러저러한 갈등도 많은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준비 없이 퇴직을 맞은 분도 많이 봅니다. 이 문제 역시 중년을 보내는 저에게는 반드시 풀어야 할 어려운 과제입니다. 그저 늙는 게 두렵고 무섭습니다.

노년을 대비하려면 먹고살 돈도 중요하지만 나이 먹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나이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제대로 먹느냐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나이’와 ‘노년’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지, 어떤 얼굴로 늙기를 원하는지, 무엇을 하며 누구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떠신지요.

▼일흔이 마흔에게▼

이제는 돌아가셨지만 93세 어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넌 늙은이를 몰라도 참 모른다.”

50대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제가 어느새 칠십 고개를 넘기니 이해가 갑니다. 50대와 60대의 늙음과 80대와 90대의 늙음은 각각 다릅니다. 요즘 50대와 60대는 중년이고 80대와 90대야말로 노년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일흔인 나는 노년에 접어든 사람들에게 ‘버리고 살기’와 ‘홀로 살기’를 조언합니다.

우선 효에 집착하면 안 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노부모 모시기에 지쳐 있습니다. 나 역시 93세에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진력이 났었으니까요.

효를 받을 생각만 하면 안 됩니다. 뭘 바라는 사람에게는 주기 싫은 법입니다. 그저 효도라는 보물을 아끼고 아껴서 보자기에 싸서 장롱 깊이 보관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그리고 내 몸과 정신이 온전할 때 홀로 살아낼 마음을 다져야 합니다.

나는 노년이 되면 ‘회심(回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맘을 돌려 먹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젊을 때 좇던 세속적인 것에서 벗어나 초월적인, 다시 말해 좀 차원 높은 데를 생각하자 이 말입니다. 그러고 나면 자식들에게서도 벗어나 초연해지는 경지를 맛볼 수 있습니다.

좋은 노년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인생을 계절로 비유한다면 노년은 포기의 계절입니다. 삶이란 매 순간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잘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집니다. 굳이 비싼 커피숍 가지 않아도 자판기 커피 먹으며 공원에 가도 됩니다.

돈만 많다고 노후가 보장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떠난 부자에게 남는 것은 돈을 노리는 사람뿐이요, 소외와 고독뿐입니다.

늙으면 이곳저곳이 아픈 게 당연합니다. 오래 살면 다 그렇습니다. 불편하고 아프지만 이럭저럭 살아갈 수 있으면 됩니다.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운동도 너무 극성을 부리면 안 됩니다. 스포츠센터 가서도 늙은이가 너무 오래 힘들게 운동하면 ‘오래 살려고 기를 쓰는 구나’ 하며 사람들이 흉봅니다.

부부간에 ‘오순도순’이 안 되면 측은지심으로라도 사세요. 노부부가 이 정도(측은지심)로만 살아 줘도 자식들에게 말썽을 주는 부모는 안 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금은 노인들이 짐이 되어 버린 시대입니다. 그러니 노인들이 말썽 안 부리고 있는 듯 없는 듯 소리 없이 살아 내는 게 자식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게 아름다운 노년입니다.

노년은 가 보지 않은 길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그 길을 혼자서 내려가야 한다니 겁이 납니다. 그러나 (삶의) 정상에 있을 때에도 나 홀로 있을 때가 많지 않았나요. 혼자 잘 지내는 사람이 혼자서 안 가 본 그 길도 잘 내려갑니다.

노년의 삶을 잘 지내는 성공 요체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고 규모를 줄이는 것입니다. 일도 줄이고 음식도 줄여야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죽는 게 아니라 안 죽는 것입니다. 너무 오래 안 죽고 오래 살아서 동년배는 물론이고 자식 죽는 것까지 보면 그야말로 무서운 일입니다.

정리=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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