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김영진/내가 사는 시대에 물음표를 던져라

  • 입력 2007년 4월 1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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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톨릭신문 창간 80주년 행사에서 가톨릭의 원로 사학자이신 최석우 몬시뇰은 “80이라는 숫자는 의미가 없다. 오직 그 시대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물음표(?)를 던질 줄 아는 신문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씀하셨다. 시대를 읽고 역사를 바르게 인도할 선각자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물음표를 던질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 마치 나의 게으른 잠을 깨우고 호통이라도 치는 듯 마음에 닿았다.

이 시대 내가 던져야 할 물음표는 무엇일까? 귀찮고 신경 쓰기 싫어서 도망 다니고, 핑계 대며 눈과 마음을 감았던 일들이 떠오른다. 생명과 환경, 빈부의 갈등, 무너지는 사회 윤리, 노동과 인권, 도전 받는 민족의 통일과 미래 등 수많은 물음표에 일부러 외면했던 일….

“신부님, 나보고 글쎄 미국 사람하고 경쟁을 하래유. 이 늙은이가 뭔 힘으로 경쟁을 해유.” 엊그제 텃밭에서 캔 고들빼기 한 움큼을 가져오신 할머니의 말씀이다. 수세식 화장실은커녕 그 흔한 싱크대 하나 없어도 늘 웃으시는 할머니는 팔십 평생을 산골에서 소 키우고 농사지으며 살아왔다. 외양간 소 한 마리와 겨울양식 쌀 한 가마니면 행복한 산골 할머니에게, 넓은 벌판에 수만 마리의 소를 키우고 헬리콥터로 농사를 짓는 미국 농부와 경쟁하라고 한 사람이 누구인지 물음표를 붙여 보고 싶지만 이 핑계 저 구실로 끝을 흐리고 말았다.

성당 옆 동산을 오르니 큰 나무 밑 구석진 곳 여기저기서 개나리 진달래가 앞 다투어 피어올랐다. 키도 덩치도 큰 참나무 떡갈나무들은 아직 잠잠한데, 등산객에게 짓밟히고 흔들리고 꺾인 보잘것없는 작은 나뭇가지들이 제일 먼저 살아 있음을 알려온다. 생명이 무엇이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침이라도 주려는 듯 새싹을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 어느 산이든 키 크고 덩치 크며 힘센 나무만 있는가. 큰 놈도, 작은 놈도, 센 놈도, 약한 놈도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기에 더욱 아름다운 산이 아니겠는가. 인간사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역사를 바르게 인도할 물음표가 그립다. 외롭고 고통스러워도 시대 앞에 물음표를 던지고 그 답을 향해 목숨을 담보하며 처절하게 살았던 우리 사회의 스승이 그립다.

김영진 신부

천주교 원주교구·구곡성당 주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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