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답사기 30선]<11>그림 속 풍경이 이곳에 있네

  • 입력 2007년 4월 1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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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거리에 불이 켜지면, 밤의 장막에 완전히 싸이기 직전 아를의 하늘은 코발트블루가 된다. 파란색에도 단계가 있다. 아주 파란색을 띠는 순간을 포착해서 촬영하고 나니 하늘이 금세 검은 천막처럼 변하고 만다. 고흐가 말한 “밤 광경과 그 느낌을 그 자리에서 그린다는 것”을 촬영을 통해 체험한 기분이 들었다.》

화가는 왜 풍경화를 그리는 것일까. 아름다운 자연이나 도시의 풍광을 기록하기 위해,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을 실험하기 위해, 혹은 자연이 베푸는 색채의 향연을 나름의 방식으로 화폭에 담기 위해 등등. 그 대답은 풍경화를 그린 화가의 수만큼 다양할지 모른다. 화가의 의도가 어떠하든, 그들이 남긴 풍경화는 마음 내키는 대로 떠나는 일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기도 하고 유혹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빈센트 반 고흐는 동생 테오가 삭막한 대도시에서 생활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옆에 두고 볼 수 있도록 아름다운 농촌 정경을 그려 보내 주었다.

그런데 인상주의 미술, 특히 반 고흐에 몰두한 사사키 미쓰오와 사사키 아야코 부부에게는 반 고흐의 풍경화가 그의 생애와 작품으로 다가서는 문을 열어 주는, 일종의 통로 역할을 했다. 파리에서 오래 생활한 사사키 부부는 반 고흐가 ‘색채와 빛’에 눈뜨게 된 프랑스에 초점을 맞춰서, 그가 작품 활동을 했던 파리와 아를, 생레미, 오베르를 직접 방문하여 그의 행적을 되짚어 나간다. 그들은 ‘고흐가 캔버스를 놓았던 장소에 서 보면, 고흐 정신의 결정체와도 같이, 그의 작품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히 보였다’고 했다.

물론 화가가 이젤을 세웠던 곳, 화가가 살던 곳을 찾아 그 자리에 섰다고 자동적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는 없다. 사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의도했든 우연이든 자주 바라보던 풍경화 속으로 들어선 듯한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나도 오베르의 교회 앞에서, 그리고 밤 시간 아를의 카페에서 바로 그런 느낌에 사로잡혀 오랫동안 꼼짝 못하고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이 놀라운 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이런 개인적이고 순간적인 경험을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고 화가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경험으로 확장한 데 있다.

사사키 부부는 집요한 열정으로 반 고흐의 그림과 일기, 평전들은 물론이고 당시의 공문서나 언론 보도 내용까지 꼼꼼하게 검토했고 반 고흐가 그림을 그린 지점을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모든 노력은 그가 풍경화를 그릴 때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는 믿음을 전제로 하며, 궁극적으로는 반 고흐가 변덕스러운 열정이나 정신병자의 광기에 사로잡혀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화가의 냉철한 시선을 유지하면서 작업했음을 보여 준다.

화가가 밟고 지나갔을 돌바닥 하나도 그저 지나치지 않는 애정 어린 시선과 섣부른 추측이나 유추를 피하고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태도가 균형을 이룬 이 책을 읽다 보면, 화가에게 다가가는 길이 미술관이나 화집, 평전 같은 문헌 자료에만 있는 것은 아님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혹시라도 미술과 여행을 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덮을 때쯤 자기만의 그림 속 풍경기행을 계획하느라 엉덩이가 들썩이지 않을까.

신성림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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