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슬픔에서 헤어나다…‘아르헨티나 할머니’

  • 입력 2007년 4월 1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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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할머니/요시모토 바나나 지음·김난주 옮김/

96쪽·8000원·민음사

일류(日流)라는 말이 나오기 전엔 무라카미 하루키와 요시모토 바나나가 있었다. 1990년대 이후 등장한 요시모토 바나나는 여성 독자들의 감성을 흔들어놓았다.

한 주에 새 일본 소설가가 서넛씩 소개되는 요즘, 요시모토 바나나의 힘은 놀랍다. 절판됐던 ‘슬픈 예감’이 재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올랐다. 새 소설 ‘아르헨티나 할머니’가 나온다는 소식도 독자들 사이에 일찌감치 퍼졌다.

‘아르헨티나 할머니’는 100쪽이 안 되는 가뿐한 소설이다. 세계적으로 열혈 팬들을 거느린 작가인 데다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 요시토모 나라가 삽화를 맡아 작품은 큰 주목을 받았다. 요시토모 나라는 큰 머리에 살짝 괴기스러운 표정의 아이 그림으로 잘 알려졌다.

소설도 줄거리만 보면 살짝 괴기스럽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슬픔을 안으로 삼키려는 딸 미쓰코와 달리, 엄마의 죽음을 지키지도 못한 아빠(매일 병문안 가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안 왔다)는 충격이 너무 크다. 그 아빠가 갑자기 ‘아르헨티나 할머니’와 동거에 들어간다. 아르헨티나 할머니는 귀신 나올 것 같은 집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 젊었을 땐 탱고와 스페인어를 가르쳤지만 배우려는 사람들이 없어지면서 머리가 이상해졌다고 한다. 그 ‘괴상한’ 할머니와 우리 아빠가 함께 산다니!

알고 보니 아빠는 할머니네 집 옥상에서 타일로 만다라를 만들고 있었다. 만다라를 통해 아빠는 아내를 잃은 슬픔, 평생의 업으로 생각했던 석공 일이 더는 요즘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슬픔을 조용히 이겨내려고 한다. 그런 아빠와, 곁에서 보듬어주는 할머니를 보면서 미쓰코는 ‘상처는 무조건 삼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아픔 한가운데 빠짐으로써 이겨낼 수 있음’을 깨닫는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은 순정만화를 보는 것 같은 감성이 어려 있었는데, ‘아르헨티나 할머니’는 그 감성이 한결 성숙해졌다. 엄마가 죽는 충격적인 사건에 맞닥뜨려도 ‘사람이란 정말 죽는 거네, 아주 평범했던 하루가 순식간에 달라질 수도 있는 거네’라고, 슬픔 때문에 펑펑 울다가도 ‘이곳에서는 눈물이 고일 때까지 마음껏 떠올릴 수 있다. 다른 생각으로 옮겨갈 때까지 아픔을 견딜 수 있다’고 담담하게 읊조리는 문장을 따라 읽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인생에서 겪는 상처는 분명 만만한 것은 아니지만 영원히 이길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작가는 따뜻하게 알려준다. ‘쿨’한 요즘 일본 소설과는 다른 감성과 문체의 맛, 꽤 괜찮다.

원제 ‘アルゼンチンババア’(2006년).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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