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춤판 벌였던 예인들’ & ‘예술을 빚은 장인들’

  • 입력 2007년 4월 1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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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 없이 추는 민살풀이춤의 대가 장금도 씨. 사진 제공 생각의 나무
수건 없이 추는 민살풀이춤의 대가 장금도 씨. 사진 제공 생각의 나무
지도와 과학기구를 만드는 장인 크리스티앙 티로.사진 제공 한길아트
지도와 과학기구를 만드는 장인 크리스티앙 티로.사진 제공 한길아트
《장인의 손놀림과 예인의 몸놀림은 타고나는 게 아니다. 시대의 문화가 어우러지고 다듬어져 탄생한다. 그들이 만드는 것은 화석화된 과거가 아니라 이 순간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새로운 생각을 더해 가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결정체다. 프랑스 장인과 한국의 숨은 예인의 삶을 조명한 책이 잇달아 나왔다.》

장바닥에서 춤판 벌였던 예인들


◇노름마치(전2권)/진옥섭 지음/1권 232쪽, 2권 236쪽·각권 1만 원·생각의 나무

초야의 예인을 발굴해 무대로 이끌어 온 전통예술 연출가인 저자가 자신이 만난 기생과 무당, 광대로 살아 온 노(老)명인 18명의 춤과 노래, 그 뒤에 가려진 애절한 사연을 유려한 문체로 담았다. 노름마치란 최고의 명인을 뜻하는 남사당패의 은어다.

‘유럽 장인들의 아틀리에’의 저자가 장인을 만난 곳이 외부 세계와 단절된 공방이라면 이 책의 저자가 예인을 만난 곳은 다방과 국밥집 같은 속세의 한가운데다. 이들은 저자가 무대로 이끌기 전까지 힘든 삶을 살면서 거리에서 기별 없이 ‘판’을 벌이던 ‘노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서울로 공연하러 갈 때마저 며느리에게 온천 간다 했던 ‘종기네 할머니’는 오늘날 사라진, 수건 없이 추는 민살풀이춤의 대가 장금도 씨. 열두 살 때 예기양성소에 들어가 판소리 승무 검무 살풀이춤을 배웠다.

예기로 이름났으나 세월이 흐르며 손가락질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저자는 여전히 장 씨의 춤이 “유적을 다시 건져 올린 듯 눈부시게 시리다”고 말한다.

무당 한부전 씨의 결혼 사진에는 연지곤지를 찍은 신부만 있다. 신이 내리자 신랑이 무당과는 못 산다며 사진의 반쪽을 떼어 갔다. 김유감 씨는 굿판을 벌이면 어김없이 어깃장을 놓는 건달들 때문에 젊은 날 굿을 못했다.

평생 굿방에서 살던 할머니가 1994년 서울에서 무가를 구송했을 때, 놀이마당을 에워싼 인파는 경기민요보다 더 구성진 소리에 놀란다. 얼씨구 추임새를 넣다가도 가슴 한끝 아련해지게 만드는 예인들의 질긴 삶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공방에 틀어박혀 예술을 빚은 장인들

◇유럽 장인들의 아틀리에/이지은 지음·이동섭 사진/408쪽·2만3000원·한길아트

장인은 웬만해선 공방을 공개하지 않지만 프랑스의 깐깐한 장인들은 한국에서 온 낯선 여성에게 공방 문을 활짝 열었다. 저자는 파리1대학에서 문화재역사학을 공부하고 있다.

저자가 만난 15명의 장인은 프랑스 문화부에서 ‘메트르 다르(거장)’라는 칭호를 받았거나 예술 애호로 유명한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보호하는 ‘레그랑아틀리에’ 소속 장인들이다. 이 책은 장인의 공방을 섬세하게 관찰하면서 기술을 예술로 끌어올린 장인의 삶을 좇는다.

르네상스 시대의 고지도를 만드는 장인 크리스티앙 티로. 그는 공방에 처박혀 산 까닭에 미쳤다는 소리까지 듣는다. 그런 그가 자신의 착상과 연구가 빼곡히 담긴 수첩을 내밀었다. 수없이 뒤적여 귀퉁이가 바랜 수첩과, 공방에 홀로 남아 아무도 알지 못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장인의 뒷모습에서 저자는 장인이 살아낸 외로운 삶의 무게를 본다.

‘어린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의 종손 알랭 드 생텍쥐페리는 화려하고 정교한 옛날 자물쇠를 복원하는 장인. 발전이란 갑자기 일어나지 않고 하루하루 조금씩 공기를 더해갈 때 가능하며 이 발전이 모여 삶이 된다는 그는 천생 장인이다. 이 밖에도 인형 시계 파이프오르간 종 등 지구상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문화재를 만드는 장인들을 만날 수 있다. 디드로와 달랑베르의 백과전서에 실린 일러스트를 담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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