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기억에 집착하지 말라

  • 입력 2007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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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다 보면 나이를 잊고 산다. 지금도 20대인 줄 안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상관없이 생물학적 나이는 세월만큼 먹기 마련이다. 새삼 실제 나이를 종종 실감하게 된다.

우선 언제부터인가 새벽잠이 없어졌다. 학인 시절 모시고 살던 노장님께서 오전 2시경이면 불도 켜지 않은 방에서 인기척을 내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는 참선하기 좋은 시간이라 일어나신 줄만 알았다. 지금 생각하니 새벽잠이 없어진 연세 탓도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또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것이 줄어드는 것’이라고도 했다.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하며 비분강개하다가도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타협하는 자비심 아닌 자비심이 많아졌다.

이제 건망증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래 잊어버릴 나이도 됐지. 그 많은 시시콜콜한 것을 모두 기억하려면 얼마나 머릿속이 복잡하겠니? 그래! 텅 비워라. 그게 지혜로운 길이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조금 담담해졌다. 망각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생각해 낸 것이 남들처럼 메모하는 일이었다. 드디어 나도 ‘수첩승려’가 된 것이다. 어디건 어느 때건 꼭 끼고 다녔다. 그런데 기록했다는 그 사실조차 잊어버릴 때는 방법이 더는 없었다.

4월의 첫 월요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고려대장경 천년의 해’ 선언식에 다녀왔다. 대장경 역시 외워서 전하던 것을 어느 날 문자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결국 기억의 한계를 모두 인정하고 기록으로 바꾼 셈이다. 고려에서 그 대장경 문자를 나무에 처음 새긴 것이 1000년 전이었다. 그날도 ‘기억과 기록’에 대한 사회자의 말이 모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소장학자 시절에는 아는 것, 모르는 것 부지런히 적어 와서 모조리 말한다. 그러다가 나이가 조금 들면 게을러져 기억나는 것만 말한다. 나중에 귀밑털이 하얘지면 생각나는 대로 말한다.” 천년모임의 좌장 격인 이어령 씨가 언젠가 다른 모임에서 하신 말씀이라는 해설을 달았다.

행사를 마치고 지인들과 인근 중년층이 주로 가는 다방에서 뒤풀이를 했다. 재기발랄한 40대 어느 문인이 그 명언보다 한술 더 뜨는 어록을 남긴 바람에 박장대소했다.

“저는 말해 놓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이미 오래됐습니다.”

원철 스님 조계종 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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