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세 재야명창 목숨 건 ‘흥부가’ 절창

  • 입력 2007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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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밤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박초선 명창이 판소리 ‘흥부가’를 상청까지 써 가며 혼신의힘을 다해 부르고 있다. 아래 사진은 병원에서 앰뷸런스를 타고 공연장에 도착한 박 명창(아래)이 공연 전 대기실에서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모습. 사진 제공 국립국악원
15일 밤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박초선 명창이 판소리 ‘흥부가’를 상청까지 써 가며 혼신의힘을 다해 부르고 있다. 아래 사진은 병원에서 앰뷸런스를 타고 공연장에 도착한 박 명창(아래)이 공연 전 대기실에서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모습. 사진 제공 국립국악원

박초선 명창, 가슴 통증 마사지 받고 무대로

15일 밤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 올해 77세의 박초선 명창이 구부정한 자세로 부축을 받으며 무대에 올랐다. 대기실에서도 가슴에 통증을 느껴 10여 분간 누워서 마사지를 받아야 했던 그는 무대 계단을 오르는 일조차 힘겨워 보였다.

공연 당일 지병이 악화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누워 있던 그는 이날 공연이 시작된 후에야 앰뷸런스를 타고 국립국악원에 도착했다. 박 명창은 무대에 올라 고수의 장단에 맞춰 단가 ‘백발가’로 목을 풀고 난 후 본격적으로 박록주제 판소리 ‘흥부가’ 중 ‘박타는 대목’을 부르기 시작했다.

“정해년을 맞아 여러분에게 많은 복이 쏟아지길 기도합니다. 박 속에서 어떤 복이 쏟아질지, 우리 힘을 모아서 한번 박을 타∼ 봅시다!”

부채를 펴서 ‘슬근슬근’ 톱질을 하는 박 명창의 발림(몸동작)에 힘이 들어가며 목소리에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박 속에서 쏟아진 하얀 쌀알을 보고 흥부 마누라가 춤을 추는 장면에서 그는 부채춤을 덩실덩실 추기도 했다. 이날 박 명창은 ‘박타는 대목’ 10여 분만 부르기로 했으나 30분을 훌쩍 넘기며 ‘비단타령’까지 이어졌다. 흥과 신명에 취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박 명창의 판소리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일부 관객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날 공연은 국립국악원이 중요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한 재야 명창 3인(향제시조 서현숙 명인, 경서도 민요 남혜숙 명창)을 초청한 무대였다.

1970년 여성 소리꾼 최초로 판소리 ‘흥부가’ 완창 공연을 했던 박 명창은 22년째 중요무형문화재 ‘정정렬-김여란제 춘향가’ 보유자 후보로만 남아 있는 재야의 명창이다. 판소리계의 전설적인 명창 박록주, 김여란의 제자로 김종기류 가야금 산조, 김일구 아쟁산조, 김월하의 지름시조, 임소향의 춤을 배워 가무악에 능통했으며 1950년대에 이미 명창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그러나 ‘국악이란 용어를 전통음악으로 바꿔야 한다’ ‘판소리 상업화를 반대한다’며 공식무대를 떠났던 그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해 점차 국악계에서 잊혀진 존재가 됐다. 현재 그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 산기슭의 불도 때지 않은 쪽방에서 홀로 기거하며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그에게 이번 공연은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무대였다. 이틀째 날인 16일에도 그는 조상선 명창의 ‘사랑가’와 단가 ‘적벽부’, 창작민요 ‘멍텅구리’ 등을 부르며 예술혼을 불살랐다.

박 명창은 “판소리는 상업화한다고 쉽게 쉽게 불러선 안 된다”며 “몸을 추슬러 죽기 전에 꼭 한 번 ‘흥부가’ 완창(7시간)을 다시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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