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우리 옛 詩興… ‘가려 뽑은 고대시가’

  • 입력 2007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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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 뽑은 고대시가/고운기 글, 이길룡 그림·191쪽·8500원·현암사(중고생)

옛날 사람들은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 고대시가로는 원시가요 향가 한시가 꼽힌다. 이 책은 예부터 통일신라까지 불린 노래 중 교과서에 나오거나 청소년이 읽어두면 좋을 것을 뽑은 것이다.

글쎄, 교과서에 나와 공부는 하겠지만 재미있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 고대시가가 아닌가. 그러나 읽는 만큼 알게 되고, 알고 있는 만큼 재미를 느끼는 것이 이 분야다. 더구나 시가 뒤쪽에 붙인 한두 쪽 분량의 친절한 해설은 재미를 배가시킨다.

먼저 최초의 노래 중 한 편인 공무도하가. ‘임이여 강 건너지 마셔요/임은 굳이 건너가시네/강물에 휩쓸려 죽으니/아, 임아, 어찌하리.’

뱃사공 곽리자고가 이른 아침 강가에서 목격한 광경이다. 흰머리를 풀어헤친 늙수그레한 남자가 강으로 뛰어들고 아리따운 부인이 울며불며 말리지만 결국 남편의 죽음 앞에서 망연자실할 뿐이다. 곽리자고는 집으로 돌아와 부인인 여옥에게 그 일을 전하고 여옥은 평소 즐겨 타는 악기인 공후를 가져와 노래를 지어 불렀단다.

대표적인 향가 ‘서동요’에 얽힌 뒷얘기는 잘 알려져 있다. ‘선화공주님은/남모르게 짝지어 놓고/서동 서방을/밤에 알을 품고 간다.’ 마치 신라의 선화공주가 벌써 백제의 서동과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것처럼 꾸민 노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은 위력적이었다.

맹랑하기 그지없는 사람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서동이 우리 고대사에서 만날 수 있는 맹랑한 사람이라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신라 헌강왕대 낯선 서울(경주) 땅에 와서 헤매다 자기 아내가 역신과 동침하는 현장을 목격해야 했던 불행한 사나이 처용의 얘기도 한 번 들어두면 잘 잊혀지지 않는다.

‘서울의 밝은 달밤/밤늦도록 노닐다가/들어와 자리를 보니/다리가 넷이로구나/둘은 내 것인데/둘은 누구인가/본디 내 것이었던 것을/빼앗아 감을 어찌 하리.’(처용가)

불륜 현장에서 물러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처용을 보고 역신이 감격해 맹세한다. “공은 노여워하지 않으니 대단하시군요. 이후로는 공의 얼굴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한 사나이의 희생으로 그 뒤 사람들이 입은 덕이 크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섯 살 난 딸아이가 갑자기 눈이 멀자 희명이 천수관음 앞에서 간절히 부른 노래 ‘천수대비가’. ‘무릎이 헐도록/두 손바닥 모아/천수관음 앞에/빌고 빌어 두노라/일천 개 손 일천 개 눈/하나를 놓아 하나를 덜어/둘 없는 내라/한 개사 적이 헐어 주시려는가/아, 나에게 끼치신다면/어디에 쓸 자비라고 큰고.’

천 개의 눈에서 하나만이라도 내어 주어 소원을 들어주기 바라는 지극한 마음이 배어 있다. ‘어디에 쓰실 자비이기에 여기서 들어주지 않으시려는가’ 하는 마지막 행의 엄포는 어느 시절이나 모성애는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한시는 중국에서 왔지만 한국인의 정서를 담았다.

금체시를 배워 자유롭게 쓰기 시작한 신라의 최치원. ‘창밖은 한밤중 부슬비 내리는데/등불 앞 내 마음 만리를 달리네’(가을밤 빗소리 속에)가 대표적이다. ‘강남 풍속 음탕하구나/딸을 길러도 아양이나 떨게 하고/성질머리하곤 바느질은 질색/화장이나 하다 악기를 고른다네’(강남녀)는 당시 중국의 ‘된장녀’를 꼬집었는데 요즘 시같이 느껴진다.

시가의 분위기에 꼭 맞는 동양화 33점은 저자의 고등학교 은사 이길룡(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 화백이 그렸다.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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