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자본가 없는 자본주의’

  • 입력 2007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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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 없는 자본주의/질 에얄, 이반 젤레니, 엘리노어 타운슬리 지음·임현진 등 옮김/438쪽·1만8000원·시유시

1989년을 기점으로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전환한 동유럽 국가들은 고전적 자본주의 이행이론의 예외적 존재들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자본을 축적한 자본가가 없는 상황에서 자본주의를 이식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본가를 대신해 어떤 사람들이 이를 주도하고 지배계급으로 떠올랐는가.

1998년 발표된 이래 비교자본주의 연구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 책은 동유럽, 그중에서도 특히 중부유럽으로 구분되는 헝가리 폴란드 체코의 사례를 추적했다. 이들 국가는 과거 자본주의를 경험한 적이 있다는 점에서 시장제도의 성장이 사유재산의 발전보다 앞서 있다. 이는 사적인 부의 축적이 시장제도의 수립보다 훨씬 앞서는 러시아나 중국의 사례와 다르다. 러시아와 중국의 경우가 ‘자본주의 없는 자본가’의 사례를 보여 준다면 중부유럽 국가들이야말로 ‘자본가 없는 자본주의’의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다.

조사 결과는 이들 국가의 새로운 지배연합은 과거 공산정권에서 호령하고 호의호식했던 노멘클라투라(특권계급)나 공산주의에 저항했던 자유주의적 반체제 인사 어느 쪽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공산정권의 인사 중에서도 정치관료를 제외한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 분파와 반체제 인사 중 일부가 경영주의라는 새로운 통치심성을 매개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여기서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3가지 자본형태로서 사회자본, 경제자본, 문화자본의 개념을 적용해 새로운 지배연합을 구성한 사람들은 대부분 문화자본의 소유자였음을 밝혀낸다. 다시 말해 고전적 자본주의에서 경제자본을 소유한 부르주아의 역할을 교양 부르주아가 대신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저자들은 이를 토대로 영국과 프랑스의 역사적 경험을 이론화한 하나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복수의 자본주의가 존재할 수 있다고 정리한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기원을 추적한 마르크스·베버·뒤르켕의 고전적 사회학을 대체해 다양한 자본주의를 연구할 신고전사회학을 주창한다.

임현진 서울대 교수 등 역자들은 이를 토대로 한국의 교양부르주아로서 지식인들에게 서구 이론의 틀에서 벗어난 남북 체제연구와 북한의 자본주의 이행 모델 연구를 제안한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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