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집-맛의 비밀]서울 종로구 ‘솔향기’

  • 입력 2007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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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나이 마흔여섯.

두 아이가 모두 컸다. 남편은 “이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라”며 등을 떼밀었다. 대형 할인점 캐셔(계산원)에 지원했지만 마흔 이상은 뽑지 않는다고 했다. 동네 제과점도 적지 않은 나이가 부담스럽다며 퇴짜를 놓았다.

북촌(北村)으로 불리는 서울 종로구 계동에서 나물보리밥 전문점 ‘솔향기’(02-763-3273)를 운영하는 이대수(52) 씨의 사연이다. 전업주부였던 그는 2001년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10여 평의 아담한 공간과 황토를 사용한 벽, 반질반질한 옷 궤가 정겹다.

○ 주인장의 말

나이 든 여성을 받아 주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 오기가 생겼습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지요. 매일 먹는 나물이며 된장찌개며, 보리밥은 어려울 것이 없겠다 싶더군요. 2층인데 조용하고 아담해 맘에 들었어요. 2층에서 식당 하면 바보라는데 당시에는 그것조차 모르고 시작했으니….(웃음)

찻집처럼 깔끔한 분위기에서 정담을 나눌 수 있는 식당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친구들과 보리밥집을 가면 늘 ‘몸뻬’를 입은 아줌마가 있고 큰 양푼을 써요. 전 그게 싫었어요.

하지만 20개쯤 되는 계단이 정말 높았습니다. 그래도 한 번 오신 분들이 다른 손님을 모셔 오면서 자리를 잡았지요. 솔향기 찾아오는 분들은 발걸음 소리가 달라요. 알고 찾아오는, ‘뚜벅뚜벅’입니다.

나물보리밥은 아무래도 신선한 나물이 중요합니다. 매일 아침 경동시장에서 제철 봄나물을 삽니다. 검은색은 고사리 시래기, 푸른색은 봄동 시금치 돌나물 쑥 냉이, 흰색은 콩나물 숙주…. 대개 4, 5가지 색깔로 나물을 준비합니다. 나물의 다양한 색은 모양뿐 아니라 몸에도 균형 잡힌 기운을 불어넣거든요.

다음은 보리밥인데 날씨에 따라 보리의 양이 달라집니다. 보리는 차가운 기운이 강해요. 그래서 겨울에는 보리가 밥의 4분의 1, 여름에는 절반입니다.

○ 주인장과 식객의 대화

▽식객=오랜만에 차지고 단 밥을 먹었습니다.

▽주인장=압력솥을 쓰는데 보리와 쌀을 섞어 물에 씻은 뒤 10∼15분 담근 다음 밥을 짓습니다. 너무 오래 두면 찰기가 없어집니다.

▽식=원래 제가 ‘나물귀신’입니다. 밥 한 그릇을 비벼 뚝딱 해치웠네요.

▽주=봄에 나는 것은 모두 먹어도 된다는 말이 있어요. 언 땅을 뚫고 돋아난 나물은 그만큼 생명력이 강하고 몸에 이로운 성분이 많다는 얘기죠.

▽식=나물을 다룰 때 요령이 있습니까.

▽주=가급적 나물을 마른 상태로 사서 무치는 게 좋습니다. 물기가 많은 것은 아무래도 신선도가 떨어지거든요. 나물을 다룰 때 소금을 쓰면 꼭 다시 물로 씻어 내세요. 그래야 소금의 쓴맛이 빠집니다. 들기름을 쓰면 맛이 살아납니다.

▽식=40대 중반에 도전에 성공하셨네요.

▽주=남편한테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어요. ‘일하고 싶을 때는 주저앉히더니, 쉬고 싶을 때는 (돈 벌라고) 내보낸다’고.(웃음) 우리 집은 보리밥이 담긴 밥그릇과 별도로 큰 접시에 나물을 따로 내놓습니다. 원하는 나물을 양껏 드시라는 거죠. 필요하면 언제나 더 드리고.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음식 장사는 보시(布施)라는 말이 맞습니다. 내 손을 거친 음식이 다른 사람을 도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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