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50년 호손 ‘주홍글씨’ 출간

  • 입력 2007년 3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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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햇빛은 엄마를 별로 안 좋아하나 봐. 엄마 가슴에 있는 그것이 무서워서 피해 다니는 것 같아…엄마, 그 글씨는 무슨 뜻이야?”

진주보다 더 귀한 딸 ‘펄(Pearl)’이 엄마에게 묻는다. 조막만 한 아이의 남다른 호기심이 헤스터 프린의 쓰린 가슴속을 자꾸만 후벼 판다.

프린의 가슴에 있는 그것은 ‘A’(Adultery·간통)라는 형상의 주홍글씨. 유부녀로서 바람을 피우고 사생아 펄을 낳은 죄를 물어 마을 원로들은 프린에게 수치심을 유발하는 상징물을 달게 했다.

이 무시무시한 형벌은 여러 사람에게 고통을 줬다. 불륜의 장본인인 딤즈데일 목사는 죄책감에 날로 병약해져 갔고 프린의 남편도 둘에 대한 복수심에 이성을 잃었다.

17세기 미국 보스턴. 종교가 모든 것의 우선이던 초창기 청교도 사회는 열정에 이끌린 한 여인의 금지된 사랑을 이처럼 처참하게 단죄했다.

1850년 3월 16일 출간된 너대니얼 호손의 주홍글씨는 미국 문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찬사를 받았다.

죄의식에 빠진 인간 심리와 청교도 사회의 비정한 논리를 그린 이 소설은 깊고 폭넓은 주제의식으로 독자들을 빨아들였다.

호손은 정작 “아무도 나 같은 무명작가의 작품을 출판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지나친 겸손이었다.

청교도 사회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은 집안 내력과 관련이 있었다.

17세기 말 악명 높은 ‘세일럼 마녀 재판’을 맡은 판사 중에는 호손의 조상이 있었다. 당시 종교 박해를 피해 신대륙에 멋진 신앙 공동체를 세우려던 이민자들은 오히려 150여 명의 무고한 사람을 마녀로 몰아 죽이거나 잡아들이는 과오를 범했다.

랠프 에머슨, 헨리 데이비드 소로 등 동시대의 뛰어난 인본주의 사상가들과 교유했던 호손은 이 사건을 두고두고 가문의 수치로 여겼다.

조상에 대한 반발 심리 때문인지 작가는 주인공에게 시종일관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프린은 주변의 손가락질 속에서도 겸손을 잃지 않으며 가난한 이웃들에게 옷과 음식을 나눠 주는 선행을 베풀었다. 그런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주홍글씨 ‘A’를 간통이 아닌 ‘Able(유능한)’, 더 나아가 ‘Angel(천사)’의 상징으로 여긴다.

물론 지금 이 시대에도 간통은 떳떳한 행위가 아니고, 작품의 방향성은 여전히 논쟁거리다. 일부에서는 “청교도들의 순수성이 왜곡돼 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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