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명의 정예군이 100만 대군을 격파한다고?”

  • 입력 2007년 3월 14일 20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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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300'(상영중, 18세 이상)은 만화 '데어데블' '씬 시티'의 원작자 프랭크 밀러가 고대 그리스의 테르모필레 전투를 소재로 그린 그래픽 노블을 스크린에 옮긴 액션 블록버스터. 이 영화의 감독 잭 스나이더나 주연 제러드 버틀러 모두 한국 관객에겐 생소한 이름이다.

더구나 줄거리는 단 한 줄로 요약된다.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가 이끄는 300명의 정예군이 100만 명의 페르시아 군을 상대로 '죽도록' 싸웠다, 그게 전부다. 동시에 그게 전부가 아니다.

¤"영화는 영화일 뿐" 이라는 당신에게

핵심은 화면 그 자체. 블루스크린 앞에서 촬영하고 컴퓨터 그래픽으로 배경을 만든 뒤 명암을 조절하고 2000번 손질했다는 화면은 그 색채와 질감이 정말 특이하다. 컴퓨터 게임을 보는 듯, 역사 속의 스파르타가 아니라 기술로 창조해 낸 환상의 세계다.

원작을 충실하게, 그러나 더 풍부하게 재현했다. 신탁을 받는 여성이 춤추는 장면은 만화에서는 단 두 컷이지만 그 부드러운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배우를 물 속에 넣고 찍은 영화 장면은 얼마나 에로틱한지 침이 꼴깍 넘어간다. 압권은 전투장면. 빠르게, 느리게, 다시 빠르게. 목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솟구치는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그 리듬감과 환상적인 화면 때문에 군무(群舞)처럼 보인다. 전쟁을 그저 게임처럼 보고 즐기게 만든다.

남자들을 위한 영화라고? '식스팩'(배에 새겨진 왕(王)자)로도 모자라 '에잇팩'의 복근을 가진 스파르타의 군사들의 강건한 육체에서 느껴지는 원초적인 섹시함은, 여성들에게도 '심하게' 즐겁다.

원작과 달리 스파르타 왕비의 비중이 큰 것도 여성 관객을 위한 서비스. 프랭크 밀러는 미국 연예 주간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EW)와의 인터뷰에서 "'남자 영화'니까 그대로 가자고 했는데 감독이 레오니다스에게 로맨틱한 면을 추가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영화속 레오니다스는 용감하고 배짱 두둑한 '마초맨'이면서 한 여자(왕비)만 사랑한다.

'300'은 9일 미국에서 개봉돼 첫 주말, 2위 보다 세 배 수입을 거둔 1위로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미국 언론은 인상적인 비주얼의 힘을 인정했지만 '볼 것은 많은데 기억할 것은 없다'(EW) '과장된 극본과 단순한 구조'(USA 투데이)라는 혹평도 많았다. '글래디에이터', '반지의 제왕'의 '짝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한 마디로 '300'은 컴퓨터 게임 세대에게 최고의 시각적 쾌락을 제공하는, 극단적으로 단순하고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오락영화다.

¤"영화는 정치적으로 역사적으로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는 당신에게

아시아 비하 논란이 있다. 테르모필레 전투는 대제국 페르시아가 작은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진 그리스를 침략한 '페르시아 전쟁' 중 일어났다. 소수의 군대가 다수의 침략자들과 맞붙어 장렬하게 전사했으니 서구의 관점에서는 영웅화할 만도 하다. 문제는 페르시아인들이 금방 지옥에서 도착한 듯한 야만인, 기형의 괴물로 그려졌다는 점. 덕분에 영화적 재미는 커졌지만 아시아쪽 시각으로는 기분 나쁠 수밖에 없다. 역사는 역사고 영화는 어차피 허구지만 허풍이 좀 셌다.

스파르타에서는 약한 아이는 신생아 때부터 갖다 버리고 극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학교에서 훔치고 죽이는 방법까지 가르쳤다고 한다. 프랭크 밀러도 "현대 관객들이 참을 수 있을 만큼 덜 잔인하게 그렸다"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한 대로 '전쟁만을 위해 살았고 어떻게 해야 평화스런 생활을 하는지 몰랐던' 사람들이며 그게 파멸의 원인이었지만 영화 속 최강 섹시 미남들은 스파르타인을 찬양하고 싶게 만들어 버린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300'은 현재의 미국과 연관된 얘깃거리도 만들었다. 미국 시사회 당시 한 기자가 감독에게 "부시는 레오니다스인가 크세르크세스(페르시아 왕)인가"하고 물었다. 감독은 대답을 피했으나, 기자들사이엔 '아버지가 완성하지 못했던 전쟁을 이어받은' 부시를 크세르크세스로 보는 사람도, '자유를 지키려 한' 레오니다스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다. 이후 베를린 영화제에서도 서구 문명을 지키려는 스파르타인들의 이야기를 이란과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시각을 대변하는 '프로파간다'(선전)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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