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누덕누덕 기워진 삶, 나는 누구지… ‘몽타주’

  • 입력 2007년 3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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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타주/최수철 지음/506쪽·1만2000원·문학과지성사

‘나 자신의 삶이 누군가 다른 사람들의 삶, 다른 사물들의 모습으로 짜깁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몽타주’의 도입부)

최수철(49·사진) 씨는 ‘독자를 배신하는 글쓰기’를 해 온 작가다.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찐 계란을 물 없이 먹는 듯 목이 메고 가슴이 답답해지지만, 그 목멤은 이 작가가 주는 이상한 매력이다.

최 씨가 오랜만에 새 단편집 ‘몽타주’를 냈다. 소설집을 내기는 6년 만이다. 9편의 단편은 ‘최수철스럽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작품들은 대개 최수철 특유의 의식의 분열을 다루되, 독해는 한결 수월해졌다.

표제작 ‘몽타주’는 목격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범인의 얼굴을 추정해 그리는 몽타주 화가 윤세화의 이야기다. 화가는 목격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정확하게 그리려고만 하지 않는다. 현장 사진도 보고 수사관들에게 정보도 듣는 등 사건을 재구성하면서 몽타주를 그린다. 그래서 윤세화의 몽타주에는 상상력이 스며 있지만 놀랍게도 언제나 범인의 얼굴과 흡사하다.

승승장구하던 화가가 문득 존재의 위기감에 부닥치는 것은 37번째 생일을 앞두고 연쇄 살인 사건 용의자의 몽타주를 맡으면서부터다. 전과는 달리 좀처럼 몽타주가 그려지지 않아 괴로워하던 화가는 문득, 지금껏 그린 몽타주들에 자신이 지나온 삶의 기억들이 조각조각 들어 있음을 깨닫는다. 자신의 삶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다른 사물의 모습으로 짜깁기됐음을 절감한 화가. 누더기가 된 몸을 이끌고 ‘나만의 얼굴’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짧고 강렬한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묻는 것은 TV와 영화, 인터넷 등으로 짜깁기한 현대인의 진짜 얼굴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종일 검색사이트에 뜨는 뉴스를 보면서 시간을 메우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와 행동을 제 것처럼 따라 하면서 삶을 기워 가는 몽타주 인간들에게 작가는 엄중하게 ‘당신만의 얼굴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는다.

삶의 진부함에 시달리다가 온몸과 뇌마저 뻣뻣하게 경직되는 고통을 겪는 남자(‘진부한 일상’), 물에 대한 과민반응으로 욕조에 몸을 담그지도, 우유를 마시지도 못하는 남자(‘확신’) 등 그의 소설은 한없이 풍요로운 일상에서 강박증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극단적인 모습으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작가가 강박증에서 벗어나는 열쇠로 던져 놓는 것은 타자와의 소통이다. 소설 ‘메신저’에서 작가는 소통이 없는 미래 도시에서 서로를 이어 주는 ‘인간 메신저’를 등장시킨다. 공상과학소설(SF) 같은 이 설정은 현대사회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물론 ‘인간 메신저’는, 현대인의 일그러진 모습을 거울에 비춰 주는 소설들을 통해 스스로의 흉측함을 깨닫게 하는 작가 자신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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