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삶의 기록-자서전 30선]<16>에드거 스노 자서전

  • 입력 2007년 3월 2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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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북지방에서 나는 기근으로 어린이들이 수천 명씩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이 기근은 결국 5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것이 나를 각성시킨 내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전쟁, 가난, 폭력, 혁명으로 점철된 내 생애의 온갖 경험들 가운데서도 가장 충격적인 것으로 남았다.”》

천생기자의 냉정한 기록, 열정적 증언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일러 ‘극단의 시대’라 했다. 오늘의 풍요로운 삶에만 눈을 돌리면, 이 정의에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그러나 인류가 지난 세기에 벌인 고투를 기억한다면, 홉스봄에 동의하게 된다.

어떤 면에서 ‘에드거 스노 자서전’은 홉스봄을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반봉건, 반식민, 반파시즘의 기치를 내세운 거대한 혁명의 물결 한복판에서 보고 겪은 바를 기록한 책이기에 그러하다. 알려진 대로 스노는 서구 언론인으로서는 최초로 마오쩌둥과 홍군을 취재해 보도한 인물이다. 말하자면, 세기의 특종을 한 셈인데, 이때의 기록을 바탕으로 쓴 ‘중국의 붉은 별’은 스노의 명성을 널리 알리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스노의 자서전을 읽을 때 초점을 맞춰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호기심과 진지한 기사거리를 얻겠다는 생각뿐”이었던 청년이 어떤 연유로 “나는 분명 더는 중립이 아니었다”고 토로하는 지경에 이르렀는가 하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기자라면 객관적 사실을 보도하면 그 임무를 다한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기자정신이라는 방파제를 넘어오는 거대한 역사의 파도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 해일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는, 그래서 (냉정한) 기록자이면서 (열정적인) 증언자가 되고 마는 삶이라는 것이 있다. 스노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오해가 있었으나, 스노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굳이 그의 이념을 규정하자면 점진적 사회주의자 정도가 되리라. 그럼에도 스노는 중국대륙을 휩쓴 혁명의 실체를 명확히 이해했다. 이념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역사상황을 정확히 꿰뚫어 보아서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천생 기자였다.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의 물결을 편견과 억측으로 물들여 보아야 소용없다. 그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 아니라, 직업적으로 충실했다. 그러기에 마오의 성공을 점칠 수 있었던 것이다.

스노가 중국통으로만 활약한 것은 아니다. 인도를 비롯한 남아시아도 취재했고, 간디와도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스탈린 치하의 소련을 방문해 그 특유의 냉철하면서도 객관적인 관찰기를 남겼다. 한 개인이 이 모든 사람을 만나고 그 현장을 목격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열적으로 살아갔던 것이다. 혁명 이후의 소련과 중국을 보는 스노의 시각은 냉정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그 혁명이 “인간적인 연대, 인류 전체의 진보 및 자유, 평등, 박애 이념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는 인색하지 않다.

스노를 세계적 명성을 누린 기자로 성장시킨 힘은 억압받는 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에 있었다. 세계 차원에서 불평등 구조가 뿌리내리는 오늘, 우리에게 스노에 견줄 만할 기자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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