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고정일]광화문, 청계천 그리고 3·1절

  • 입력 2007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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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한 끌과 망치로 서울 참모습이 망각의 늪에 하나하나 사라져 간다. 어느 민족에게나 그들의 정신이 하나로 모이는 도시가 있다. 유대인에게는 예루살렘, 스코틀랜드인에게는 에든버러, 우크라이나인에게는 키예프, 카탈루냐인에게는 바르셀로나가 그렇다. 우리 민족의 혼이 모이는 서울이야말로 어느 나라 수도보다 통일조국 중앙에 입지한 역사적 전략적 우위가 뛰어나다.

3·1절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종로와 청계천, 이는 한양 천도 이래 서울의 중심을 이루는 대동맥이다. 세종로에서 동대문 간 2.8km 육의전, 그 구석구석에서 조상의 숨결과 역사의 힘찬 고동을 느낄 수 있었다. 청계천은 인왕 북악 골짜기에서 샘물 솟아 흘러 일찍이 청풍계천(淸風溪川)이라 불렸으며, 그곳에 아취를 자아내던 스물네 개의 크고 작은 다리가 가슴 펴 버텼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창덕궁, 종묘, 덕수궁, 탑골공원 원각사는 바벨탑으로 덮이고, 북촌 한옥마을마저 시멘트 덩어리로 뒤섞여 버렸다. 박은식 주시경 한용운 안창호 김두봉 이광수 김성수 최남선 등이 우국을 논한 청계천 장통교 조선광문회, 인사동 33인 기미독립선언장 태화관은 없다.

그날 선언문 서명 순서로 논란이 일자 “이건 죽는 순서야, 아무나 먼저 쓰면 어때! 손병희 먼저 써!”라는 남강 이승훈의 서릿발 일갈이 당장 울려나올 것만 같은 태화관 터.

청계천 원류 중 하나인 마른내골(인현동) 이순신 생가 터. 서울 민속의 아름다움 정월 대보름 수표교 놀이. 3·15부정선거를 규탄하고 학교로 돌아가는 고려대생들을 깡패 수백 명이 습격하여 4·19혁명 촉발점이 된 배오개다리 현장. 6·25 피란민의 역동적 삶의 난전 천변 둑길 오간수교. 이런 역사의 자취는커녕 그 정신마저 찾을 길 없다. 특히 조선광문회는 근대정신의 발원지며 기미독립운동의 태동지다. 우국지사들이 모여들어 국학 고전을 간행하고 최초의 국어사전을 편찬하며 나라 잃은 시름을 담론하곤 했다. 당시 외국 신문 잡지를 통해 파리강화회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이승만 안창호의 구미(歐美)에서의 독립활동, 도쿄 유학생의 2·8독립선언을 알게 된다. 이에 국내에서도 독립운동을 결의한 곳이 바로 조선광문회였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그날 수십만 군중이 서울 종로 청계천으로 밀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하늘을 찌르는 민족의 함성, 그 의기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역사적 거사 며칠 전 조선의 대표적 교육자이며 기독장로교계의 얼굴인 남강 이승훈이 평양에서 빈손으로 내려왔다. 자칫 계파 갈등으로 거사 자체가 무산될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그때 인촌 김성수는 “이번 거사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라면서 거금 5000원을 육당 최남선에게 내놓으며 출처 밝히지 말고 남강에게 전달해 거사 분담금으로 사용하도록 부탁한다. 육당은 돈을 보자기에 싸서 단걸음에 남강이 머물고 있는 YMCA 뒤 황금여관으로 달려가 전한다. 이때 인촌의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육당의 제자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의 증언이다.

시멘트로 뒤덮인 옛 자취들

이처럼 나라 잃은 상황에서 조국의 독립된 미래를 꿈꾸던 지식인들의 뜻이 충만한, 우리 선각들의 자취와 정신이 살아 숨쉬는 역사적 장소들이 사라져 간다. 그 자리에 베를린장벽 몇 조각 뜯어다 놓고, 클래스 올덴버그의 붉은 ‘스프링’을 청계천 입구에 상징 조형물인 양 세웠다. 민족의 얼이 응집되어야 할 서울이, 파리가 지닌 지성, 런던의 도덕성, 뉴욕의 진취성, 도쿄의 청결성, 로마가 지닌 역사성, 그 무엇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곳이 되어 가고 있다.

3·1절은 다시 돌아왔는데, 선구들의 꾸짖음 어찌 들을 것인가.

고정일 소설가·동서문화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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