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불안을 조각한 ‘기마상’의 작가 마리노 마리니 전시회

  • 입력 2007년 2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1960년대 국내 조각도들을 열병처럼 들뜨게 했던 마리노 마리니(1901∼1980). 헨리 무어와 함께 전후 구상 조각의 쌍두마차로 불리는 이탈리아 조각가 마리노 마리니의 작품이 한국에 왔다. 서울 중구 정동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덕수궁미술관에서 4월 22일까지 열리는 ‘마리노 마리니-기적을 기다리며’ 전. 마리니의 작품이 국내에 선보이기는 처음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중 역사의 비극과 상처를 만드는 것이 다름 아닌 ‘인간’임을 절감하고, 공포와 절망을 청동 조각에 투여한 마리니. 이번에 소개되는 105점의 작품 중 유명한 기마상 연작에서 그가 겪은 ‘불안의 20세기’를 만날 수 있다.

말 위에 사람이 앉은 기마상은 영웅을 상징하는 데 쓰인 사회적 장치다. 그러나 마리노는 작품 ‘기수’에서 영웅이 아닌 순박한 표정의 벌거벗은 남자를 말 위에 올려놓아, 기성관념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전쟁 후인 1947년에 만든 이 작품은 특히 말의 포즈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앞으로 쭉 뻗은 말의 머리에서 등으로 이어지는 긴장된 선은 다가올 불안의 기운을 암시한다.

마리니는 아내와 함께 스위스로 피신해 전쟁의 피해는 보지 않았지만, 그런 바람에 전쟁이 끝난 뒤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의 충격은 훨씬 컸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려는 말과 몸이 뒤로 젖혀진 기수(1952년 작 ‘기적’), 파편화돼 겨우 형체만을 알아볼 수 있는 말과 기수(1962년 작 ‘커다란 외침’) 등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기마상은 더욱 암울해진다.

우리에게는 ‘기마상의 작가’로 잘 알려졌지만 ‘포모나’ 연작이나 초상 조각 등 마리니의 유명한 다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이 전시회의 매력이다. 포모나는 숲의 요정이자 과일의 여신으로 행복과 재탄생을 상징한다. 부드럽게 부푼 배, 풍만한 가슴, 둥근 엉덩이 등 마리니가 만들어 낸 여성의 누드는 풍요롭지만, 한편으로 온몸에 남아 있는 신경질적인 스크래치(긁힌 자국)와 떨어져 나간 목(1941년 작 ‘포모나’) 등에서 여전한 불안을 짐작할 수 있다. 어른 5000원, 어린이 3000원. 02-2022-0600

한편 선화랑도 마리니의 판화와 드로잉 작품 등을 모은 전시회를 3월 22일까지 마련한다. 02-734-0458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