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독자 가고 대중 독자가 왔다

  • 입력 2007년 2월 2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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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진 기자·김원중 기자
최남진 기자·김원중 기자
■ 세계의 문학 ‘2000년대 표준 독자’ 분석

서울 거주 22세 여대생 김모 씨. 한 달에 한두 번 시내 중심가 대형 서점에 가며 ‘에쿠니 가오리’류의 소설을 사 본다. 베스트셀러 목록이나 인터넷 독자 서평을 살펴보긴 하지만 구매를 결정하는 것은 책의 내용을 직접 확인하고 나서다. 대학 도서관이나 대여점, 친구들에게서 빌려 읽을 때도 있다. 독서 시간은 잠들기 전 1시간 정도. 인터넷 이용 시간이 훨씬 많고 개봉 영화 무료 시사회를 알뜰히 챙기는 영상 세대지만 재미있는 소설이라면 기꺼이 손에 잡는다.

다음 주 출간되는 ‘세계의 문학’ 봄호에 소개되는 ‘2000년대 표준 문학 독자’의 모습이다. ‘세계의 문학’은 특집 ‘누가 문학을 읽는가’에서 한국의 문학 독자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짚었다. 결론은 ‘엘리트 독자가 물러난 자리를 대중 독자들이 채우고 있다’는 것.

○ 엘리트 독자가 쇠하다

이 특집에서 성균관대 천정환 교수는 ‘2000년대 한국소설 독자 Ⅱ’라는 기고를 통해 엘리트 독자가 사라져 간다고 선언한다. 그는 직접 인터뷰한 모델 독자 G, C, Y 씨를 통해 엘리트 독자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사회과학을 전공한 40대 초반의 남성 교수. 주요 한국소설 작품과 김윤식 백낙청 등 대가급 평론가의 저작을 읽었다. ‘창작과 비평’ 등 문예지를 읽고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한국 현대소설 사상 최고의 유산이라고 믿는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선 ‘한국문학의 대안’인지 모르겠다며 유보적이다.

인문학 출판사의 40대 남성 주간. 문예지는 안 보지만 우리 작가의 주요 작품집과 장편을 꾸준히 읽는다. 천명관의 ‘고래’, 박민규의 ‘카스테라’ 같은 30대 작가들의 작품을 재미있게 읽었고 ‘좋은 문학적 역량을 갖고 있다’고 평한다.

문학박사 학위를 소지한 30대 초반 여성 대학강사. 한국소설 중 어떤 작품이 대중적으로 읽히는지, 평단에서 회자되는지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현장의 한국문학 작품은 거의 읽지 않는다. “재미가 없을 것 같고, 안 읽어도 세상 사는 데 별 문제가 안 되기 때문”이다.

독자 G 씨는 우리 문학 교육과 인문학 제도가 길러 낸 가장 모범적인 엘리트 독자다. C 씨는 성실한 엘리트 독자이긴 하지만 G 씨에 비해 문학의 변화를 보는 태도가 유연하다. 천 교수는 “Y 씨는 문학도이면서도 G, C 씨와 같은 선배 엘리트 독자의 명맥을 잇지 못하는 독자”라면서 “전통적 의미의 엘리트 독자가 단절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밝혔다.

○ 재미난 이야기를 찾는 대중 독자들

그렇다고 문학 독자 자체가 사라지는가? 이 특집에 따르면 엘리트 독자의 뒤를 잇는 것은 들끓는 대중 독자다. 출판문화연구소 백원근 책임연구원은 특집 기고 ‘통계로 본 소설 독자’에서 지난해 ‘국민 독서실태 조사’(성인 1000명, 초중고교생 3000명 대상)를 꼼꼼하게 분석했다. 그 결과 남성보다는 여성이, 세대별로는 20대가, 대학생과 화이트칼라 직업군이 소설을 많이 읽으며, 소설 독자들이 다른 문학 장르 독자들보다 영화를 많이 본다는 등의 자료를 토대로 ‘서울 거주 22세 대학생 김모 씨’라는 2000년대 표준 문학 독자의 초상을 뽑아냈다.

이들에게는 앞선 엘리트 독자들처럼 한국문학 작품을 읽거나 최소한 알아야 한다는 ‘충성심’이 없다. 일본소설이나 영미권 치크리트(chick-lit) 등 국적을 가리지 않고 읽으며 소설의 선택 기준은 ‘재미와 오락’이다. 백 연구원은 이 같은 대중 독자들 때문에 “소설 판매량은 안정적이고 견실하며, 다양한 방식을 통해 여러 사람이 한 권의 소설을 읽는 경향이 있다”면서 소설은 힘센 장르라고 밝혔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이 조사에 따르면 한국소설은 엔터테인먼트 경쟁력 제고가 필요한 조정 국면”이라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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