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맞는 단어 찾아 14년 산고…‘새한불사전’ 만든 불문학자들

  • 입력 2007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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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간 학자 135명의 공동작업을 거쳐 9일 햇빛을 본 사전을 펼쳐 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새한불사전’의 산파들. 왼쪽부터 아주대 박만규 교수, 서울대의 정지영 명예교수와 홍재성 교수. 강병기 기자
14년간 학자 135명의 공동작업을 거쳐 9일 햇빛을 본 사전을 펼쳐 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새한불사전’의 산파들. 왼쪽부터 아주대 박만규 교수, 서울대의 정지영 명예교수와 홍재성 교수. 강병기 기자
특정한 우리말 표현에 해당하는 외국어를 찾기 위해 사전을 뒤져 본 사람들이 번번이 느끼는 것은 ‘꼭 맞는 표현’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한국어-외국어사전은 그 개념에 해당하는 단어와, 거기에 ‘∼하다’를 붙인 동사와 그 예문만 안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연락’이라는 단어의 경우 연락을 하다 외에도 연락을 주다, 연락이 되다, 연락이 가다, 연락이 닿다, 연락이 오다 등 다양한 표현이 있지만 대부분의 한외(韓外)사전은 연락이라는 단어만 갖고 나머지 표현을 유추해서 써야 하는 불편이 있다.

이런 불편을 대폭 개선한 사전이 나왔다. 한국불어불문학회에서 새롭게 펴낸 ‘새한불사전’(한국외국어대출판부)이다. 무려 7만7300여 표제어가 실렸고 2813쪽 분량이다. 135명의 학자가 참여했고 제작 기간만 14년이 걸린 이 사전은 기존 한불사전, 한영사전을 포함한 한외사전을 환골탈태한 방식으로 제작됐다.

이 사전 출간의 산파 역할을 했던 주역들을 9일 오전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사무실에서 만났다. 편찬위원장을 맡은 정지영 서울대 명예교수, 사전 편찬을 기획하고 그 기초 연구를 진두지휘한 홍재성 서울대 교수, 후반 교열작업을 총괄한 박만규 아주대 교수다.

“이 사전에서 ‘노랗다’는 표현을 찾으면 한국인들이 흔히 쓰는 ‘싹수가 노랗다’에 해당하는 프랑스어 표현이 무엇인지가 들어 있어요. 떡 항목을 찾으면 떡을 치다, 떡 주무르듯 하다, 떡 줄 사람은 아무말도 없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에 해당하는 프랑스어 표현도 찾을 수 있습니다.”

가장 젊은 박 교수는 이 사전의 실용성을 강조한다. 심지어 ‘동그랑땡’처럼 한국인들이 흔히 쓰는 단어도 표제어로 들어가 있다고 자랑한다.

프랑스어 연구뿐 아니라 우리말 연구에 대한 공로로 2000년 외솔상을 수상한 홍 교수는 “한외사전을 만들면서 이를 위해 아예 별도의 우리말사전을 먼저 만든 것이나 필요한 예문의 대부분을 학자들이 직접 집필한 것도 국내 사전 제작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전은 국어학자들이 참여한 준비위원회를 통해 우리말에 자주 쓰인 표현을 선정→한국어작성위원회를 통한 우리말사전 제작→불어불문학자 중심의 대역(對譯)위원회를 통한 프랑스어 대역→기욤 장메르 고려대 불문과 교수와 프랑스와 캐나다의 현지 원어민이 참여한 교열작업을 거쳐 이뤄졌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73개 학과를 자랑하던 불문학과는 이제 3분의 1 가까이 줄어 50여 개 학과 내지 전공으로 줄어들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학회 측은 지난한 작업을 거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수요에 대응한 사전을 만들어 낸 것이다.

정 교수는 “당초엔 불어불문학회가 1978년 펴낸 ‘한불사전’(표제어 6만 개)을 개편하려고 했는데 홍 교수의 제의로 최신 사전학 이론을 접목해 완전히 새로운 사전을 펴내게 됐다”며 “이번 사전 편찬이 다른 외국어학회에도 자극을 줘 베끼기와 짜깁기가 난무하는 한국 사전문화에 변화를 가져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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