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기타의 ‘문화혁명’ 긴 밤 지새우고 이젠…

  • 입력 2007년 2월 6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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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기타 하나 메고 무작정 찾아간 서울 중구 무교동 음악감상실 ‘세시봉’. 청바지 차림의 대학생 윤형주와 송창식은 어느덧 환갑을, 그들 어깨의 통기타는 마흔 살을 맞았다.

지난달 ‘한국포크송협회’(회장 윤형주) 탄생을 시작으로 ‘2007 코리아 포크송 페스티벌’ 콘서트(10월 예정), ‘통기타 가요제’(8월 대천해수욕장), 포크음악 40주년 기념 옴니버스 음반 발표 등 기념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벌써 그렇게 됐나”, “뿌듯하다”, “앞으로 걱정이다”라는 감탄과 우려가 공존하는 한국 포크 음악. 오늘을 살아가는 포크 음악인들에게 40년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 과거…낭만과 저항 사이

연세대 의대생 윤형주와 서울예고 졸업생 송창식이 만난 것은 1967년. 이듬해 2월 이들이 결성한 듀오 ‘트윈폴리오’는 우리나라 포크 음악의 시발점이었다. ‘하얀 손수건’, ‘웨딩케익’ 등 서정적인 이들의 통기타 선율은 당시 트로트 일색이던 가요계에 ‘청년 문화’를 뿌리내리게 했다.

윤형주는 “젊은이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통기타로 표현할 수 있었기에 포크 음악은 가요계 ‘민주주의’와도 같았다”고 말했다. 초창기 이들과 함께 음반을 낸 가수 조영남은 “통기타 붐은 일종의 ‘경제적 성장’의 징표”라며 “‘딴따라’라 평가받던 과거의 음악과 달리 포크 음악은 당시 고학력자들(대학생)의 지성 있는 음악으로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모두에게 통기타가 필연적 선택은 아니었다. 송창식은 “원래 클래식 성악도가 되고 싶었으나 꿈이 좌절된 후 통기타를 잡았다”고 말했고, 가수 양희은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아르바이트 삼아 ‘아침이슬’을 불렀는데 이곡이 데모 주제가로 쓰일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통기타 음악은 트윈폴리오-조동진-어니언스-김세환-해바라기-시인과 촌장 등으로 이어지는 낭만주의와 김민기·양희은-한대수-정태춘-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등으로 대표되는 저항주의 사이를 오가며 시대마다 젊은이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다.

○ 현재…포크가 사라진 시대

많은 포크 가수는 현재를 ‘통기타 부재의 시대’라 칭한다. 낭만과 저항, 그리고 대학가요제 문화까지 이끌며 한국 대중음악계 주류로 성장한 포크 음악은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랩 댄스 음악이 나온 뒤 점점 젊은이들의 관심권에서 멀어졌다. 21세기 국내 포크 음악은 대부분 ‘미사리 카페촌’으로 대표되는 7080 추억상품으로 존재한다. 주류 음악계에서는 그나마 유리상자, 나무자전거, 추가열 등이 포크의 명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도 쉽지만은 않다. 나무자전거의 강인봉 은 “통기타 치며 노래 부르면 구시대 가수처럼 취급받기도 한다”며 “과거의 감성만 고집해서는 급변하는 시대에 살아남기 힘들다”고 말했다. 가수 임지훈도 “‘포크 음악=향수’ 이미지로 남지 않으려면 7080 가수들이 옛날 노래만 부르지 말고 신곡을 발표하며 나날이 새로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 미래…희망은 있다

포크 가수들은 “아직 저력이 남아 있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포크 음악의 대부’라 불리는 밥 딜런이 지난해 새 앨범을 발표해 30년 만에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신인 포크 뮤지션 잭 존슨은 미국과 영국에서 앨범차트 1위에 올랐다. 또 일본에서는 지난해 포크 듀오 ‘고부쿠로’가 베스트 음반으로 180만 장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는 등 세계 시장에서 포크 음악의 위상은 여전하다. “포크 듀오 ‘어떤 날’의 조동익 선배를 보고 음악인이 되려 했다”는 가수 김현철이나 ‘토이’의 유희열 등 국내 실력파 뮤지션들에게 포크 음악은 ‘뿌리’와도 같다.

젊은 음악인들은 포크 음악의 부흥을 위해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포크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포크 1세대 가수 조영남은 “송창식, 윤형주 등 대선배들이 새 음반을 발표, 밥 딜런처럼 저력을 보여 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유행만 좇으려는 가요계의 가벼운 분위기가 없어져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기타 배우는 10대들 보며 포크의 미래 기대”

■ 데뷔 40주년 트윈폴리오 윤형주-송창식

40년 전 통기타로 의기투합했던 두 청년. 환갑을 맞은 이들은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어깨에는 여전히 통기타를 메고 있다.

한국가수권리찾기협의회 회장을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윤형주(60)는 올해 한국포크송협회 회장을 맡았다. 송창식(60)은 경기 하남시 미사리 카페 ‘록시’에서 매일 공연을 하며 가수 ‘외길’을 걷고 있다. 양복(윤형주)과 한복(송창식)으로 비유되는 두 사람은 트윈폴리오 결성 40년을 맞는 감회도 대조적이었다.

“트윈폴리오 40년은 포크 음악의 40년이자 가난과 맞서 싸웠던 전후세대의 역사와도 같아요.”(윤)

미사리에서 만난 송창식은 인터뷰 자체를 꺼렸다. “40년 역사에 대한 뿌듯함은 있지만 감회랄 것도 없어요. 내 음악 역사에서 포크는 일부분이고 지금은 포크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으니….”(송)

1968년 한 장의 정규음반에 이어 3, 4장의 옴니버스 음반, 리사이틀 음반을 발표한 이들은 1년 후 해체를 선언했다. 짧은 활동에도 불구하고 당시 10대 소녀 팬들을 이끌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잘했다기보다 당시 매체가 라디오뿐이었고 감성적인 통기타 음악도 그다지 많지 않았고… 희소성 덕분이겠죠. ”(윤)

해체 후 윤형주는 ‘어제 내린 비’ 같은 서정적인 음악을 고수했고 송창식은 ‘왜 불러’ ‘가나다라’ ‘우리는’ 등 다양한 실험적 시도를 해 나갔다. 그는 “내 변화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지만 난 줄곧 변화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한국 포크 40주년을 맞은 올해 이들의 바람은 포크의 부활. “지금은 음악보다 방송을 먼저 생각하는 후배들이 있고 ‘껌 씹다가 단물 빠지면 뱉는’ 식의 사랑 노래가 많은 것 같아요. 음악은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영혼의 소리인데…. 그래도 통기타 배우는 10대들이 있다고 하니 희망은 있다고 봅니다.”(윤)

두 사람은 김세환과 함께 ‘포크 빅3’ 공연을 몇 차례 하기도 했다. 트윈폴리오 40주년 공연은 어떨까? 대답이 묘했다.

“추억보다 아름다운 게 없겠죠?”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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