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형수]‘시뮬레이션 문화’ 시대

  • 입력 2007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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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06년 ‘올해의 인물’은 바로 ‘당신(You)’이었다. 선정 사유는 ‘당신’이 디지털 민주화라는 새로운 사회 현상의 물꼬를 트고 있는 주체라는 것이었다. 무한히 확장되고 있는 사이버 세계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사건이 벌어진다. 그런 사건의 핵심에는 늘 새로운 ‘당신’이 있다.

타임이 얘기하는 ‘당신’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계속 진화하고 있는 새로운 ‘나’다. 물론 새로운 ‘나’는 악성 댓글을 쓰는 악플러가 될 수도 있고, 온라인 게임에 중독돼 몸과 마음이 약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사이버 세계의 ‘나’에게는 늘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 어떤 가능성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사이버 세상 속 ‘나’의 운명이 달라진다.

사이버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셰리 터클은 물리적 실재를 가상으로 구성하는 시뮬레이션 문화가 우리의 정신과 몸, 기계에 대한 기존 관념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여러 연구를 통해 설명했다. 그는 사이버 세계의 새로운 ‘나’에 대한 성찰을 강조하면서 “실제 세계와 사이버 세계의 경계선에 놓여 있는 자아가 조금씩 사이버 세계로 삶의 중심을 옮겨 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CNN 등 주요 언론은 3차원 가상현실 사이트 ‘세컨드 라이프’(secondlife.com) 속의 사이버 대사관 개설에 대한 뉴스를 전했다. 스웨덴 정부가 세컨드 라이프 안에 정보 포털 역할을 할 사이버 대사관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사이버 세계인 세컨드 라이프 속 스웨덴 대사관은 실물 여권이나 비자를 발급하지 않는다. 그 대신 방문자는 아바타(분신)를 통해 통관 절차를 3차원 시뮬레이션으로 체험하고, 인터넷상의 스웨덴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이버 세계를 통해 스웨덴은 자국 홍보를 효과적으로 하게 되는 셈이다.

이것은 시뮬레이션 문화가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아바타는 아직 포털 사이트의 수동적 장식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진보하는 사이버 세계 속 아바타는 ‘나’를 대신해 가상 환경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있다.

세컨드 라이프 속 아바타는 아침에 눈을 떠 출근을 해 사무를 보고, 거리를 거닐며 친구를 만난다. 그뿐만 아니라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감상하거나 집을 지을 땅을 구매하기도 하고, 쇼핑을 하면서 먹을거리를 찾아 레스토랑에 가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시뮬레이션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실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다만 사이버 세계의 일상에 담을 만한 예술과 문화가 빈곤한 탓에, 기술을 문화적 도구로 쓸 기회를 우리가 놓쳤을 뿐이다.

세컨드 라이프에서의 스웨덴 대사관 개설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배경에는 정보기술(IT) 환경을 문화적으로 적절하게 활용하는 스웨덴 정부의 정책적 비전이 있다.

아바타를 사용하는 기술에 관한 한 한국의 온라인 게임은 세계적이다. 한국 정부는 문화를 홍보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다양한 IT 콘텐츠 상품과 기술 및 인력 개발에 막대한 예산을 쓰고 있다. 하지만 뛰어난 기술에 비해 사회 문화적 효용이 부재한 것이 문제다.

정부의 문화 관련 정책은 기술 개발과 상품 개발에 발목을 잡혀 상상력을 잃고 있다. 이제라도 일관성을 갖고 시뮬레이션 문화를 디자인하는 기획과 정책이 필요하다.

IT로부터 상상력을 펼쳐 가도록 정부의 정책이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해마다 많은 예산이 상상력이 결핍된 IT 개발에 허비되고 있다. 새로운 문화현상 속에서 또 다른 ‘황우석 사건’이 생겨나고 있지는 않은지, 늘 경계해야 할 것이다.

김형수 연세대 교수·커뮤니케이션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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