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의 길거리 플래시몹 '눈에 띄네'

  • 입력 2007년 1월 26일 11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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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25일 낮 12시40분 서울 혜화동 대학로 전철역 1번 출구. 시민들이 부지런히 오간다.

갑자기 30여명의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하늘을 향해 일제히 소리친다.

“비다.” “산성비가 내린다.”

지나가는 시민들의 시선도 하늘로 향한다. 하지만 파란 하늘에는 비는커녕 햇볕이 쨍하다. 한 할아버지가 “별 이상한 놈들 다보겠네”라는 눈으로 쳐다본다.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소리 지르는 것에 몰두해 있다. 목소리에는 더욱 힘이 들어간다.

“비가 와요.” “진짜 산성비가 와요.”

한술 더 떠 우산까지 펼쳐 든다. 10여명은 땅에 드러누워 고통을 호소한다.

“윽~, 살려주세요.”

산성비로 인해 고통 받는 생명체를 표현하는 듯하다. 잠시 후 한 줄로 길게 늘어서더니 어깨동무를 한다. 그러고는 신나게 노래 부른다.

“오~ 영원한 친구, 오~ 행복한 마음, 오~ 즐거운 인생, 야!”

노래가 끝나자 머리 위로 팔을 올려 하트 모양을 만든다.

구경하는 시민들을 행해 “사랑합니다”라고 외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뿔뿔이 흩어진다. 퍼포먼스에 걸린 시간은 대략 2분이다.

#장면2

같은 날 오후 1시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근처 횡단보도.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자 한 사람이 폭1m, 길이 5m 가량의 레드카펫을 깐다. 한 사람은 목청껏 소리친다.

“그분이 오신다.”

‘그분’이라는 말이 신호일까. 지나던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모여든다. 어림잡아 30명은 되는 것 같다. 그들은 레드카펫 근처로 몰려가 ‘그분’을 에워싼다.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며 열렬히 환호한다. 이내 신호가 빨간불로 바뀐다. 그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카펫을 걷어들고 사라진다.

플래시몹, 가장 자극적이고 효과적인 홍보 수단

신세대들의 문화 트렌드 중 하나인 ‘플래시몹(flashmob)’이다. ‘플래시몹’은 다수의 사람이 이메일이나 휴대폰을 통해 미리 공지된 지령에 따라 약속 장소에 모여 정해진 행동을 한 뒤 순식간에 흩어지는 행동을 말한다.

2003년 국내에 처음 소개됐을 때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젊은이들 사이에 새로운 문화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기업이 사원교육에 이용하기도 한다.

국내의 한 대기업은 이날 신입사원들로 하여금 새로운 트랜드를 경험ㆍ공유함으로서 소속감 및 일체감을 강화하기 위해 플래시몹을 진행했다.

‘산성비’ 퍼포먼스에 참여한 노정혜 씨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데서 하려니 좀 창피했다. 하지만 직원들이 모여 시민들에게 특정 주제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어서 소속감을 느꼈고 보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레드카펫’의 주인공 홍석표 씨는 “사람들은 살면서 한번쯤 영웅이 되고 싶은 꿈을 꾼다. 그런 욕망을 표현해 대리만족을 주고 싶었는데 잘 전달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번 대선에서 지지자들이 플래시몹을 할 수도…”

‘플래시몹’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하치선(30, 서울 강서구) 씨는 “인터넷은 개인과 개인의 피상적인 관계가 아니라 유대감을 형성해주는 통로다. 특이한 것을 좋아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취향을 반영하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안형준(41, 경기도 안산) 씨는 “떼거리로 모여서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 요즘 신세대들이 재미로 한다고 하니 막을 수야 없겠지만 길거리를 가로막고 바닥에 드러누워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줘서야 되겠느냐”고 나무랐다.

이민진(14, 서울시 성북구) 양은 “갑자기 몰려들어 이상한 행동을 해서 처음에는 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재밌었다. 나도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문화사회연구소 이동연 소장은 “인터넷의 사이버 공동체가 현실 공간으로 옮겨진 현상”이라며 “다만 퍼포먼스나 해프닝 같은 것을 의도하기 때문에 기존 오프라인 모임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플래시몹’이 하나의 트렌드로 부상한 이유에 대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자극적이고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기 때문”이라며 “내용이 황당한 게 많아서 이해가 되진 않겠지만 효과를 단숨에 낼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플래시몹은 네티즌들이 벌이는 일시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꾸준하게 진행된다기보다는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벌어질 것”이라며 “이번 대선에서 지지자들이 플래시몹을 선보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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