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나’ 연주 속에서 찾는다

  • 입력 2007년 1월 2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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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문의 영광’에서 김정은이 피아노를 치며 ‘나 항상 그대를’을 부르고,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박신양이 ‘사랑해도 될까요’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한번쯤 자신의 연인 앞에서 멋지게 악기를 연주하는 꿈을 꿔 본다. 새해 수많은 결심이 있지만, 직장인들 사이에서 악기 배우기도 열풍이다.》

○ 뚜렷한 목표…나선형 방식 선호

사무실 밀집 지역인 서울지하철 2호선 선릉역 부근의 실용음악학원 ‘매치스튜디오’엔 전체 수강생 중 80%가 직장인이다. 퇴근 후 뿐만 아니라 점심을 패스트푸드로 때우고 학원을 찾는 사람도 많다.

“쿵쿵쿵 두들기면 공장에서 쌓인 스트레스 때문에 답답했던 가슴이 후련하게 씻겨 내려가는 듯해요. 점심시간에 30분씩이라도 연습하려고 사무실에 아예 드럼을 갖다 놓았지요. 젊은 직원들에게도 무기력하게 있지 말고 취미활동에 힘쓰라고 독려합니다.”(한동빈·47·위너테크 사장)

악기를 배우려는 사연도 가지가지다. “청혼용 피아노곡을 멋지게 연주하고 싶어서”(서동국·32) “웹디자인을 하는데 새로운 감성을 키우기 위해”(박현욱·25) “아버지 환갑잔치에 가야금을 연주해 드리기 위해”(정미연·30) 등.

경기 광명시 연서뮤직 아카데미 임성미(32) 원장은 “바쁜 시간을 쪼개어 오는 직장인들은 ‘뭐 한번 배워보려고 왔어요’라는 식보다는 구체적 목표가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이 악기를 배울 땐 기초부터 연주 스킬을 쌓아가는 피라미드 방식보다는 쉽고 재미있는 곡 하나를 마스터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나선형 방식을 선호한다. 바쁜 직장인들에게는 인터넷을 통한 일대일 레슨, 각종 인터넷 동호회 이용도 악기를 익히는 좋은 방법이다.

10년 전 출범한 ‘갑근세’라는 직장인 연합밴드는 최근 ‘2007 출범 강남 직장인밴드 양성소’를 새롭게 꾸렸다. 기존 동호회 사람들끼리만 즐기는 폐쇄적인 밴드 모임에서 벗어나 누구에게나 개방해 음악을 배울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처음엔 회원이 20여 명에 불과했으나 현재 인터넷 카페(mule.cyworld.com) 회원이 2200여 명으로 늘었다.

○ 색다른 차별화, 국악 배우기

“지난해 말 강원 낙산비치호텔에서 열린 ‘송년의 밤’ 행사에서 제가 팀 대표로 노래를 했어요. 판소리 ‘흥부가’ 중 한 대목을 부르니까 사람들이 정말 희한하다며 즐거워했어요. 저만 할 수 있는 장기라 직장에서 저를 알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배정일(39·여·ING생명 FC) 씨는 매주 화요일 서울 성북구 돈암동 ‘진양 한마당’ 국악원에서 채수정 명창에게서 흥부가 직장인 완창반 수업을 듣고 있다.

국악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국악원과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문화학교가 대표적인 공간이다. 국립국악원 야간반(오후 7∼9시)에는 250명 정도의 직장인이 해금, 가야금, 판소리, 대금, 피리 등 각 반에서 국악을 배우고 있다.

여자 친구와 함께 국악원에 등록한 권경복(32·화인경영회계법인 회계사) 씨는 “저는 대금을, 여자 친구는 가야금을 배운다”며 “같은 취미를 가지니까 둘 사이도 더 돈독해지고 좋다”고 말했다. 아쟁을 배우는 신훈(38·서울시 공무원) 씨는 “사람의 목소리를 닮은 아쟁을 연주하면 울고 싶을 때 못 우는 답답한 마음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년을 대비하는 악기로도 국악이 안성맞춤. 가야금을 배우는 박은경(35·와인바 ‘미쉘’ 경영) 씨는 “평생 다룰 수 있는 악기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인생이 묻어나는 국악기가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박민영(서울대 영어영문학과 3학년) 김아영(〃)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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