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쪽발이’와 결혼이라니?… ‘백년가약’

  • 입력 2007년 1월 13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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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가약/무라타 기요코 지음·이길진 옮김/382쪽·9800원·솔출판사

“일본인은 남자도 여자도 상스럽게 맨발로 걷고, 살을 드러내는 데 수치심이 없다. 그래서 고국에서는 그들을 쪽발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 상스러운 사람들과 우리 자식들을 결혼시키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무라타 기요코의 ‘백년가약’은 17세기 일본에서 벌어진 한일 결혼 소동을 그린 장편소설.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답게 구성도 문장도 탄탄하다. 요절복통 코미디 속에 한국의 관습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담겨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온 조선 도공들은 규슈(九州)의 사라야마(皿山)에 도자기 공방을 차린다. 그곳에서 가장 큰 공방을 운영하는 가라시마 주조(한국명 장정호)의 가족이 소설의 주요 인물들. 도자기 공방의 창업자인 백파 박정옥 할머니가 죽은 뒤 아들 주조는 계속 동족끼리 결혼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진다. 자식들의 혼사 문제로 고심하던 주조는 결국 딸들을 일본인 공방의 아들들에게 시집보내기로 결심한다. 일본인 사회에 참여해 힘을 가져야겠다는 ‘전략’ 때문이다.

‘상스러운 일본인’이 아니라 ‘염치를 아는 조선인’이라는 데 긍지를 갖고 한평생을 살았던 백파 할머니가 이 사건에 가만있을 리 없다. 혼령이 된 할머니는 손자손녀들의 결혼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일본 작가의 눈에 비친 한국의 전통을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가 크다. 삼년상을 치르고 부모의 묘소에 가서 곡을 하는 모습을 자세하게 소개하는 부분에서 우리 효(孝) 문화에 대한 부러움이 엿보인다. “조선의 여자들은 결혼해 햇수를 거듭할수록 가정에서의 발언권이 강해진다. 신혼 무렵에는 가련한 꽃과도 같지만,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점점 입이 열려 무섭게 기염을 토한다” 같은 부분에서 작가의 통찰력을 찾아낼 수 있어 흥미롭다.

무엇보다 빼어난 것은 문명의 충돌이 융합(결혼)으로 바뀌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솜씨다. 작가는 요란한 결혼 소동을 통해 그 융합의 과정이 얼마나 많은 갈등과 논쟁을 빚는지를 전달함으로써, 17세기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의 주제가 21세기에도 고민할 만한 문제임을 암시한다. 원제 ‘百年佳約’(2004년).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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